[나무편지] 사진으로는 경이로운 생명력을 표현하기 어려운 큰 나무
★ 1,239번째 《나무편지》 ★
오늘 《나무편지》에서 이야기할 나무는 사진으로 그 경이로운 생김새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나무입니다. 경상북도기념물로 보호하는 〈청도 명대리 뚝향나무〉입니다. 뚝향나무는 향나무의 변종으로 위로는 기껏해야 3~4미터 정도 오르는 게 고작이지만, 옆으로 뻗어나가는 가지 펼침은 매우 장대한 나무입니다. 마치 앉아있듯이 낮게 깔린다 해서 앉은향나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북 지역에서 자라는 한국 특산종인데, 오래 전부터 둑을 보호하기 위해 많이 심던 나무여서 뚝향나무라는 이름으로 부르다가 굳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청도 명대리 뚝향나무〉는 효를 극진히 실천한 인물이어서 ‘절효(節孝)’라고 불리는 조선 전기의 문인 김극일(金克一, 1381-1456)의 위패를 모신 운계사(雲溪祠) 앞에 자리잡고 살아온 나무입니다. 얼마 전에는 이 나무 곁으로 작은 개울이 지나고 있었는데, 나무 곁으로 작은 산길 도로로를 내면서 개울은 사라졌습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 뚝향나무의 전형적인 생김새를 갖춘 나무입니다. 나무높이는 5미터 정도 되지만 독서로 뻗은 나뭇가지는 28미터에 이릅니다. 얼핏 보아도 ‘대단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사진으로 이 나무의 경이로운 모습을 표현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한정된 공간 범위에서 한 컷의 프레임으로 나뭇가지 펼침을 모두 담아내는 것도 쉽지 않지만, 겨우 담아냈다 해봐야 이 나무가 실제로 보여주는 경이로운 모습을 표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화각이 넓은 광각렌즈 어안렌즈로도 어림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잘 표현할 방도가 없을까 이리저리 돌아보지만, 도리 없습니다. 최소한 내가 가진 장비로는 불가능합니다.
동서로 펼친 나뭇가지펼침 폭이 너무 넓은 탓에 어쩌면 한 그루의 나무로 보기 어려울 듯도 합니다. 이 나무는 그러나 분명히 한 그루입니다. 뚝향나무는 땅에 가까이 낮게 가지를 휘늘어 뜨리고 자라는데요. 그 과정에 나뭇가지가 땅바닥에 닿으면 마치 ‘휘묻이’와 같은 방식으로 땅에 닿은 나뭇가지가 뿌리를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청도 명대리 뚝향나무〉도 몇 그루가 모여 자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한 그루인 걸 몇 차례 확인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처음 돋아난 중심 줄기 부분을 사진으로 보여드리려는 마음으로 나뭇가지 아래에 납작 엎드려 줄기 부분을 표현하려 했지만, 그것도 어렵습니다. 어지러이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하나의 중심 줄기는 확인할 수 있지만, 그걸 사진으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몇해 전보다 나무의 기세가 무성해져서 휘늘어진 나뭇가지는 거의 땅에 닿아 있어서 아무리 납작 엎드려도 겨우겨우 맨눈으로만 그 줄기를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여간 대단하다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 뚝향나무의 깊은 멋을 제대로 느끼려면 해가 들지 않는 나무 아래의 줄기들의 복잡 무상한 생김새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나뭇가지 아래에서 온갖 형상으로 뒤틀리고 휘어진 생김새는 그저 어지럽기만 하게 느껴집니다. 마음대로 휘어지고 꼬이고 뒤틀리고 늘어진 가지들은 어떤 곳에서는 땅 속으로 파고들어 마치 여러 그루의 나무가 섞여서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요. 앞서 이야기한 대로 뚝향나무의 특징입니다. 저리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이룬 하나의 큰 나무를 바깥에서는 그 경이로운 생명의 안간힘을 하나도 느낄 수 없습니다.
여기 맨 끝에 20여 년 전의 사진 한 장을 덧붙입니다. 그때는 그나마 나무 곁으로 흐르는 작은 개울이 있어서, 그 개울가로 내려가서 나뭇가지 아래쪽을 겨우 살필 수 있었거든요. 물론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기억해보건대 나뭇가지도 지금만큼 무성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래서 굳이 개울가의 나무 아래쪽으로 기어들어가 이 나무의 중심 줄기 부분을 기록한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은 카메라는 그때의 디지털카메라로서는 매우 좋은 성능에 속하는 카메라였는데, 무려 ‘200만 화소’의 카메라였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변화 속도가 아주 빠르다는 걸 알만한 사실이기도 하네요.
〈청도 명대리 뚝향나무〉는 나무 바로 앞의 운계사에 위패를 모신 김극일의 후손들이 3백 여 년 전에 심고 잘 보호해온 나무입니다. 이 나무를 처음 찾아본 20여 년 전에는 운계사 담장 안쪽의 마당 담벼락 가까이에 서 있던 사철나무 한 그루도 뚝향나무와 함께 경상북도기념물로 지정돼 있었지만, 그 나무는 고사해 2012년에 기념물에서 해제했습니다. 제 사진첩에 남아있는 20여 년 전의 사진에 들어있는 사철나무도 이미 고사 직전 상태였지요. 사철나무로서는 꽤 큰 나무였고, 문화재로 지정한 사철나무도 몇 건 없는 실정인데,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겁니다.
남부지방에서 시작한 장마가 중부지방까지 올라왔습니다. 주말에 비 퍼붓다가 잠시 소강상태입니다만, 일기에보를 보니, 내일부터는 비가 이어집니다. 안전에 유의하시며 건강하게 이 계절 안녕히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4년 하반기가 시작되는 첫 날 아침의 《나무편지》, 여기에서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7월 1일 아침에 1,239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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