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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중얼거리다

스승의 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5. 16. 14:08

 

오래된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한 통의 메일을 빌견했다. 날짜를 보니 2002년 6월 말쯤이다. 어느 학생이 기말고사가 끝난 후 수강 소감을 보낸 것이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제일 머리 아픈 것이 성적처리인데 이 학생은성적 처리마감 이후에 편지를 보냈다. 성적이 이상하다는 둥, 성적을 올려달라는 둥 적지 않은 학생들의 민원에 시달리던 기억도 떠오른다.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엄격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학생들에게 배운 것도 많다.  다 지난 일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1학기때 수원캠퍼스에서

교수님의 "철학의 이해"를 수강하였던 학생입니다. 제가 교수님께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진심으로 교수님의 수업을 참 감명 깊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대학이라는 곳에 처음 와서 전공을 포함한 여러가지 과목을 듣고, 또 벌써 한 학기를 마쳐가면서 저는 한번 제 자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과연 시작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생활하였는가, 그러나 역시 누구나 그렇듯이 저 또한 그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번 더 생각하였습니다. 그럼 내가 21살의 반년 동안 얻을 것이 무엇일까? 라고 말입니다. 전공과목도 그리 뛰어나지 못하였고 중요한 것은 전공에 대한 흥미도 없었습니다. 문학을 좋아해서 많은 문학 과목들을 들었지만 제가 느끼고 제가 바랬던 교수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제가 반년 동안 얻은것을 찾았습니다. 바로 교수님의 수업이였습니다. 책 위주의 수업과 딱딱한 이야기로 자신 혼자서 수업하시는 여느 교수님과는 달리 교수님의 수업은 정말로 살아있는 수업이였습니다. 끊이지 않는 말솜씨와 교수님의 개인적인 이야기인듯하면서도 결국 수업내용과 부합되며 또 우리에게 교훈을 주었던 시간. 교수님의 강의라는 이미지 보다는 '인생의 선배님이 해주시는 말씀'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록 지각도 자주하고 결석도 번번히 해서 교수님의 모든 수업에 출석하지는 못하였지만 '철학의 이해'시간이 반년 동안 저에게는 즐겁고 유익했던 시간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이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기말고사 보는 날 꼭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차마 그러질 못하였습니다.

제 인생에서 지식뿐만이 아닌 뭐라고 말하기 힘든 무엇인가를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s

쑥스럽고 아직 기말고사 채점도 다 안하셨을터라 일부러 성명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결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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