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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철학 이야기

제 7강 인간과 신의 경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2. 13. 16:45

7강 인간과 신의 경계

 

 

. ()의 개념

     1. 절대적 존재 :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지니지 않는 영원불멸의 존재

     2. 종교화된 신 : 구원의 힘을 믿는 신앙의 대상.

. 종교의 탄생

    1. 애니미즘과 조상 숭배

     첫째, 원시인들도 현대인과 똑같이 삶과 죽음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알았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를 결여한 상태인데, 그 무엇은 생명 또는 애니마라고 할 수 있다. 그 무엇(생명)이 죽음 뒤에 육체에서 분리되어 떠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둘째, 원시인들도 현대인과 똑같이 꿈이나 환상 속에서 자기가 육체를 떠나 분리되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친구와 식사를 할 수도 있는데, 나의 육체는 한국에 그대로 있다. 분명히 꿈속에서 나의 육체를 떠나간 무엇인가를 전제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육체와 구별되는 영이라고 하였다.

   2. 종교란 영어의 ‘religion’을 번역한 용어이다

      * 종교란 다시 묶는다라는 뜻이다.(신과 인간)

      * 비트겐슈타인의 가족닮은꼴(family resemblances)이론

      * 동북아 문화권에서는 종교의 개념이 희박했다.

     * 종교라는 개념이 우리 동양인(혹은 한국인)에게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우리의 언어체계에는 종교라는 단어가 원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란 단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이 개념은 생긴 지가 100여 년밖에 안 되는 아주 새로운 것이다. 종교란 단어는 영어의 ‘religion’을 번역한 용어이다. 이 용어를 만든 사람은 동아시아에서 서양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일본의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19세기 말에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수많은 영어 단어를 번역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 학문에 관계된 것을 살펴보면, ‘정치경제철학이니 경영이니 하는 단어들이 모두 이때 종교와 같이 번역된 말이다. 서구의 새로운 학문들이 물밀듯이 전해질 때 ‘politics’‘philosophy’와 같은 서양 학문의 이름이 이렇게 번역된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정치니 철학이니 하는 단어들이 중국에서 유래한 오래된 단어로 생각하고 있었을 터인데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철학 같은 단어는 완전히 일본 학자들이 새롭게 만들어낸 단어이다.

                                                                - 최준식 종교란 무엇인가2004

3.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1900

    1)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힘은 약화되었다.: 인간 중심의 가치관

    2) 모든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를 지니고 있다 Will to Power

    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1883~85)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기독교의 관습을 극복하고 자기의 가치를 창조할 때 나타나 는 초인 超人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속하는 것을 존중하며, 충만한 느낌, 넘쳐흐르려고 하는 힘의 느낌, 고도의 긴장에서 오는 행복감, 베풀어주 고 싶어 하는 풍요로움의 느낌을 가진다. 그도 불행한 자를 돕지만, 동정에서가 아니 라 넘쳐나는 힘에서 비롯된 충동에서 돕는다.

 

시 읽기

   1. 예문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전문, 님의 침묵(1926)

 

2. 군말

 

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戀愛)가 자유(自由)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拘束)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한용운, ‘군말전문, 님의 침묵(1926)

3. 만해 한용운의 설악산 백담사 오도송悟道頌

 

男兒到處是故鄕 남아도처시고향             남아란 어디 메나 고향인 것을

幾人長在客愁中 기인장재객수중            그 몇 사람 나그네 근심 잦단 말을 일렀는가?

一聲喝破三千界 일성갈파삼천계             한 마디 큰소리 질러서 삼천 대천 세계 뒤흔드니

雪裡桃花片片飛 설리도화편편비             눈 속에 복사꽃 붉디붉게 피네

 

4. 만해 한용운(1879~1944) 연보

1879년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부친 한응준(韓應俊)과 모친 창성 방씨(方氏) 사이에서차남으로 출생. 용운(龍雲)은 법명, 만해(萬海·卍海)는 법호, 본명은 유천(裕天).

1885년 향리 서당에서 한문 수학. 동몽편(童蒙篇· 소학(小學)통감12권을 배움.

1886대학(大學)수학함.

1892년 전정숙(全貞淑)과 결혼.

1896년 동학란에 가담, 의병의 우두머리로 혁명생활 시작.

1897년 의병에 실패하여 설악산 오세암에 피신하여 불교에 대해 공부하고 대장경을 독파함. 1899년 설악산에서 하산하여 세계일주를 마음먹고 블라디보스톡까지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방랑생활 시작.

1905년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가 김연곡화상(金蓮谷和尙)에 의해 출가함.

1908년 일본을 여행하며 신문물을 시찰. 이 당시 일본인 화천(和淺) 교수 및 유학생 최린과 친교 맺음. 귀국 후 서울에 경성명진측량강습소를 개설.

 

1909년 한국 불교의 혁신을 주장하는 <조선불교유신론>을 발표함.

19108, 중국 동북삼성(東北三省)을 망명. 이시형, 신백우, 윤세복 등과 함께 의병학교를 건립하여 독립군을 양성. ‘승려 취처(娶妻)’에 관한 건의서를 당국에 제출하여 물의를 빚음. 백담사에서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

 

1911년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에 예속시키려는 이회광(李晦光) 일파를 성토하기 위해 순천 송광사에서 승려 궐기대회 소집.

1913년 부패한 교단 및 승려의 근본적 유신을 주장한 <불교유신론> 발행.

1914년 불교사상을 널리 포교하기 위해 통도사(通度寺)에서 대장경을 열람하고 불교대전(佛敎大典)발간.

1915년 영남 호남 지방의 사찰을 순례하며 강연을 함.

1918년 월간 교양지 유심(惟心을 발간하여 신체시의 형태를 탈피한 시 <()>을 발표. 이어 10월에 <()는 자조물(自造物)이다>, 12월에는 <자아를 해탈하라> ·<천연(遷延)의 해()> · <무용(無用)의 노심(勞 心)>을 발표함.

 

19193·1운동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 육당이 쓴 <독립선언서><공약 삼장>을 첨가함. 3·1운동 주동자로 체포되어 투옥됨.

19223, 출감. 개벽지에 옥중시 <무궁화를 심고자>를 발표.

1923동아일보<조선급(朝鮮及) 조선인의 번민>을 발표.

1924년 대한불교청년회 총재에 취임. 중편소설 <죽음> 탈고.

1925년 대표작 <님의 침묵> 탈고, 6월경 <십현담 주해> 탈고.

1926십현담 주해님의 침묵발행.

19271, 신간회를 발기하고 중앙집행위원에 선임. 5, 경성지 회장 취임. 수필 <여성의 자각>동아일보에 발표.

1928별간곤(別乾坤지에 <천하명기 황진이>를 발표.

1929년 광주학생 의거를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면서 조병옥·김병로 등과 민중대회를 열다.

1930조선농민지에 <소작농민의 각오(覺悟)>를 발표.1931불교지를 인수하여 <불교청년동맹에 대하여> 등 다수의 논문 발표.

1932년 수필 <평생 못잊을 상처>조선일보에 발표하교 <원숭이와 불교>불교지에 발표.

1933년 유 씨(俞氏)와 재혼. 불교지에 <현대아메리카의 종교> · <선과 자아(自我)> ·

1935<북대륙의 하룻밤>이라는 회고담을 조선일보에 발표하고, 처녀 장편소설흑풍(黑風)조선일보에 연재함.

1936년 장편소설 <후회>조선중앙일보에 연재. (신문폐간으로 50회에서 중단됨.)

1937년 장편소설 박명조선일보에 연재. 청년 불교도의 항일투쟁 단체인 만당(卍黨) 사건의 배후자로 피검됨. 불교지가 속간되자 집필활동을 계속하여 많은 논문 발표.

1939<삼국지>를 번역하여 조선일보에 연재.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을 벌임.

1943년 조선인 학병의 출정 반대운동 벌임.

1944년 성북동 심우장에서 사망. 유해는 다비(茶毘)를 거쳐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됨.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중장(重章) 수여됨.

1967년 파고다공원에 그의 업적을 찬양한 비(龍雲堂大禪師碑)가 세워짐.

1973년 전6권으로 된 한용운전집이 유저(遺著)로 발간됨.

 

* 202321.51억원 님의 침묵 초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