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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해·빨간 동백·눈 내린 산사… 겨울이라 더 좋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 11. 16:14

 

붉은 해·빨간 동백·눈 내린 산사… 겨울이라 더 좋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01-11 09:01
  • 업데이트 2024-01-11 09:05
 

전남 여수 향일암의 일출 장면. 금오산 자락의 암자 향일암은 일출명소로 이름났다.



■ 호젓한 매력… 겨울테마 여행지

여수 향일암 해돋이명소 이름나
대웅전서 보는 일출 풍경 훌륭

눈 내린 계룡산사 정취도 일품
강원 진동리마을선 눈꽃 산행

미식여행엔 포항 과메기 으뜸
피데기·개복치·고래고기 별미

겨울 여행 계획에는 ‘분명한 테마’나 ‘뚜렷한 장면’이 필요하다. 다른 계절이라면 웬만한 여행지를 택해도 실패하는 법이 거의 없지만, 겨울에는 딱 맞는 풍경이나 이야기 하나쯤은 겨누고 가야 한다는 얘기다. 겨울은 설경을 빼놓고는 어디든 살풍경할 뿐만 아니라, 추운 날씨 때문에 야외활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겨울 여행이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어딜 가나 호젓하고 조용하다는 장점도 있다. 올겨울 추천하는 뚜렷한 겨울 여행 테마와 그 테마에 맞는 여행지를 추천한다.

# 일출과 동백… 여수 향일암·오동도

여수 돌산도 남쪽의 암자 향일암은 해돋이와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이름난 곳이다. 향일암을 겨울에 추천하는 건 남녘의 바다에는 한겨울에도 한 자락 훈기가 스며 있기 때문이다. 여수에서 돌산대교를 넘어 돌산도 남녘 끝의 금오산 자락에 향일암이 있다. 291개 계단을 딛고 대웅전 앞에 서면 세존도를 비롯한 다도해의 섬과 돌산도의 상록림, 해안절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가 어우러진다.

향일암 대웅전은 깎아지른 급경사 절벽을 발밑에 두고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데, 여기서 보는 일출 풍경이 훌륭하다. 새해 첫날은 아니지만, 그래도 1월이니 이달 말까지 뜨는 해를 ‘신년의 일출’이라 해도 좋겠다. 여명의 바다에서 수면 붉은 해가 떠오르면 탄성과 함께 온 바다가 붉게 물든다.

눈 속에 피어난 여수 오동도의 동백.



오동도는 동백으로 유명한 곳. 여수 시내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3만8000여 평의 섬에는 동백나무, 신우대 등 온통 푸른 상록림이 울창하다. 오동도 동백꽃의 절정은 3월 중순이지만, 꽃의 30% 정도는 2월 중순 안에 핀다.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과 병풍바위, 용굴, 지붕 바위 등 섬 곳곳의 명소를 돌아보는 오동도 탐방로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높다.

# 눈 속의 산사… 계룡산 갑사·마곡사

눈 내린 산사에는 차고 맑은 정취가 스며 있다. 계룡산국립공원의 동학사∼갑사 탐방 코스는 한꺼번에 두 명찰을 연계하면서 겨울 등산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산행은 동학사나 갑사 어디서 시작해도 좋다. 동학사에서 시작하면 오른쪽과 왼쪽 길, 두 개의 선택이 있다. 오른쪽 길은 남매탑∼금잔디고개∼갑사까지 이어지는 4.7㎞ 코스이고, 왼쪽 길은 관음봉을 거쳐 금잔디고개∼남매탑을 지나 동학사로 다시 내려오는 7.8㎞ 남짓의 원점회귀 코스다.

동학사∼갑사 코스는 한때 국어교과서에도 실렸던 이상보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에 등장하는 남매탑까지 오르는 바로 그 길이다. 남매탑까지 오르는 길은 본격 산행에 가깝지만, 남매탑을 지나면 길이 편해진다. 남매탑 너머 금잔디고개에서 용문폭포를 지나 갑사까지 2.3㎞ 남짓의 길은 순하다. 산행을 마친 뒤 인근 유성온천에서 온천욕으로 산행의 피로를 풀 수 있다. 갑사에서 유성온천 가는 버스가 자주 다닌다.

인근 마곡사는 전란의 와중에도 난리를 피할 수 있다는, 정감록에 나오는 이른바 ‘십승지’ 중 한 곳이다. ‘춘(春) 마곡’이라 해서 신록의 마곡사가 이름났지만, 겨울철은 조용하고 고즈넉한 매력이 있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극락교를 건너면 곧바로 마곡사의 본전인 대광보전으로 이어진다. 경내에는 일본인 장교를 살해한 김구 선생이 탈옥 후 마곡사에 은신했을 때 심었다는 향나무도 있다.

인제 진동리 설피밭에서 주민들이 전통스키를 타는 모습.



# 폭설 쏟아진 마을풍경… 인제 진동리

강원 인제의 오지마을인 기린면 진동리는 대관령, 진부령과 함께 인제의 대표적인 폭설 지역이다. 한번 폭설이 내리면 눈이 1m 가까이 쌓여 마을이 완전히 파묻힐 정도. 겨울이면 눈이 잦아 주민들은 설피를 신고서야 바깥출입을 할 수 있을 정도다. 진동리를 ‘설피밭’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설피는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눈에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신발 위에 겹쳐 신을 수 있는 나무로 만든 덧신을 말한다. 겨울 진동리 마을에서는 설피를 신고 눈꽃이 활짝 핀 마을과 인근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서 겨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진동리에는 아침가리를 비롯해 빼곡한 원시림과 방태산 자연휴양림 방동약수 등이 있어 사계절 오지 여행을 즐기는 동호인과 관광객 산악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는 첩첩산중’이라고 해 이름이 붙여진 아침가리는 전국 최대의 원시림 지역으로 겨울철에는 울창한 산림과 얼어붙은 계곡 위에 하얗게 눈꽃이 덮여 장관을 이룬다. 방태산 자연휴양림은 겨울철 등산로를 따라 걸으며 즐기는 눈꽃 트레킹의 매력이 이름났다. 방태산 자연휴양림 인근에 위치한 방동약수는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차가운 약수 맛이 일품이다.

# 진한 풍미의 겨울 맛… 포항 과메기

겨울 포항을 대표하는 건 과메기다. 포항의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내놓는 과메기는 대부분 최상품이라고 봐도 좋다. 죽도시장에는 겨울 과메기를 맛볼 수 있는 횟집이 즐비하다. 줄지어 늘어선 식당들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죽도시장에는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말린 ‘통마리’나 온풍기를 쓰지 않고 자연에서 건조한 과메기도 맛볼 수 있다. 통마리는 말리는 과정에서 기름이 빠지지 않아 반으로 갈라 말린 ‘배지기’보다 풍미가 더 깊고 진하다. 자연 건조한 과메기는 쫄깃한 식감이 더하다.

포항까지 갔다면 과메기 말고도 먹어야 할 음식이 많다.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물회와 피데기다. 겨울 해풍에 덜 말린 오징어 피데기도 별미로 죽도시장 등에서 손쉽게 살 수 있다. 개복치와 고래 고기, 상어고기도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것들이다.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