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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온갖 벌 나비와 하나 되어 이룬 생명의 환희, 가을의 서정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0. 16. 16:51

[나무편지]

온갖 벌 나비와 하나 되어 이룬 생명의 환희, 가을의 서정

  ★ 1,201번째 《나무편지》 ★

  나무들처럼 이 가을을 매우 분주하게 보내는 중입니다. 매오로시 봄과 가을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모두 잘 지내셨지요. 아침에 띄울 《나무편지》를 이제야 올립니다. 지난번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던 ‘일본의 큰 나무 답사’는 즐거이 잘 다녀왔습니다. 지난 화요일 저녁에 돌아왔는데요. 그 다음 수요일부터 연달아 이어지는 일정이 빽빽이 채워져 있는 바람에 닷새 동안 푸지게 만났던 나무들의 사진조차 여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천리포수목원’에 다녀왔습니다. 천리포 숲에는 이 계절이면 반드시 피어나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 ‘진다이개미취’ 꽃이 한창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입니다.

  진다이개미취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개미취 종류의 품종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원인 ‘진다이식물원’에서 개미취를 원종으로 하여 선발한 품종이라고 합니다. 푸른 빛이 도는 보랏빛으로 화려하게 피어나는 진다이개미취의 꽃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천리포 숲길을 천천히 걷는 일은 이 계절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행복입니다. 사람에게만 그런 건 아닌 모양입니다. 진다이개미취의 꽃송이에는 그야말로 온갖 곤충들이 다양하게 모여듭니다. 제가끔 불러들이는 곤충과 짝을 이루는 여느 식물들과 달리 진다이개미취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곤충이 분주하게 모여듭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끈히 행복합니다만, 가만히 눈높이를 맞추고 꽃 무리에 날아드는 벌, 나비 종류를 하나 둘 헤아리는 재미 또한 즐겁기만 합니다. 국화 종류의 꽃들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깊어갑니다. 진다이개미취뿐 아니라, 참취 종류, 겹삼잎국화 종류를 비롯해 가을을 대표하는 국화 종류의 모든 꽃들이 살금살금 꽃잎을 여는 중입니다. 아침 저녁 바람이 쌀쌀해졌지만, 아직 천리포 숲을 지키는 나무들에는 단풍 물이 채 오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열흘에서 보름 쯤 지나야 울긋불긋해질 겁니다. 지금은 그저 단풍 물을 올리느라 한창 채비 중일 뿐입니다.

  가을에 피어나는 꽃 가운데에는 매혹적인 향기가 특별한 꽃도 있습니다. 은목서 금목서를 포함하는 ‘목서 종류’입니다. 천리포수목원 본원 구역의 도로변 울타리에서 만날 수 있는 목서 종류는 은목서입니다. 다닥다닥 줄지어 서 있는 은목서의 꽃이 지금 한창입니다. 잎겨드랑이에서 자잘하게 피어나는 꽃은 여느 가을꽃에 비해 작은 탓에 도드라지게 눈에 띄지 않지만, 이 길을 걸을라치면 결코 놓칠 수 없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짙은 향기 때문입니다. 워낙 많은 꽃송이가 피어나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향기는 남아있을 겁니다. 지난 주의 ‘일본의 큰 나무 답사’에서는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오래된(대략 500년 수령의) 은목서를 만나기도 했는데요. 그 나무는 다음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계절에 천리포수목원 숲길을 아름답게 하는 꽃들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꽃이 ‘대상화’입니다. 원예 쪽에서는 ‘추명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대상화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그 가운데 보랏빛을 띠는 ‘호북대상화’가 있고, 위의 사진처럼 순백의 빛깔로 피어나는 꽃도 있습니다. 모두 대상화 종류입니다. 한 걸음 두 걸음 내디딜 때마다 눈길을 사로잡는 가을 꽃들이 지천입니다. 모두가 한데 어울려 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단풍 아니어도 가을 숲의 풍미는 충분합니다.

  지난 여름 끝자락에 더 없이 화려하게 피었던 꽃무릇의 꽃은 모두 시들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지난 9월 4일치 1,196번째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꽃 진 자리’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 자리에 초록의 새 잎이 돋아났습니다. 저 아름다운 초록의 잎으로 꽃무릇은 가을 지나 새 봄 올 때까지 이 자리를 푸르게 지킬 것입니다. 여름 가고 가을 오자, 새 봄을 기약하며 겨울 이겨낼 채비 마치고 피어나는 풀꽃들의 신비로운 생명력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 10월 16일 한낮에 1,201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