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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철학 이야기

제 1강 우리에게 문학과 철학은 왜 필요할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1. 7. 14:23

 

1강 우리에게 문학과 철학은 왜 필요할까?

 

 

. 문학

 

유종호 (예술원 회원)은 문학을 '행복 체험'이라고 불렀다. 그는 "문학이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행복 체험을 주는 언어 예술"이라며 "문학은 언어 예술이기 때문에 다른 예술에 비해 성찰적, 비판적 기능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문학을 통해 얻게 되는 삶의 지혜가 우리의 욕망이나 충동을 조정해서 우리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적 상상력은 의표를 찌르는 구체성과 설득력으로 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고 현실을 재발견하게 한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김영하(소설가)는 문학과 예술을 '감성 근육'이라고 불렀다. "육체 운동을 통해 근육을 키우듯이, 소설을 즐기기 위해서는 감성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영화나 미술도 그렇다. 소설을 진지하게 읽고 영화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허세를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향유하기 위해서다

 

 

. 철학

 

철학은 한마디로 ‘어떻게 살 건가’를 다루는 것이다. 삶의 존재 이유를 천착하는 것이다. 문(文)이란 글자는 원래 ‘무늬’란 뜻이다. 그럼 ‘인문(人文)’은 뭔가. 사람이 그리는 무늬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무늬를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남의 무늬만 따라서 그린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한 삶일까?

 

인문적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책 많이 읽고, 철학자들의 말을 외워서 앵무새처럼 떠들고, 지식 많이 쌓는 게 인문적 시각이라 본다. 그게 아니다.
인문적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인문적으로 사고하는 거다. 남의 똥 헤집는 게 아니라 내 똥을 싸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게 인문적 시각이다.

 

-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인문학이라는 학문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움직이는 생물과 같은 것이다

 

- 강희정 서강대 교수(불교미술사학자)

 

 

자유와 치유의 인문학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에는 소피스트라는 식자들이 청년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문법 논리학 웅변술 수사학 변증론 등이었고, 그 후 거기에 산수 기하 음악 천문학 등이 추가되었다. 그리스가 로마에 의하여 정복된 기원전 146년경 이 학문들은 자유학예(Liberal Arts)라고 불리면서 널리 유포되고 있었다. 우리는 이 학문들이 자유학예라 불린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학문들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밝음으로 나가게 하고, 미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학문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학문은 자유학인 것이다.

 

그러면 자유학예가 인간을 어떤 것들에서 자유롭게 하였는가. 인간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신화적 사고에서, 미신에서, 종교적 허상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그리고 잘못된 사회적 인습인 노예제도, 귀족과 평민으로 가르는 신분제도, 남성위주의 가부장제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며, 프랑스 혁명은 군주제를 공화제로 전환하였다. 우리는 이것들을 학문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세기경 로마의 정치사상가인 시세로는 자유학예를 'Studia humanitas', 인간학 또는 인문학이라고 이름한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인문학이라는 용어가 시세로에 의하여 2천 년 전에 고안되었음을 알게 된다. 시세로는 자유학예들이 인간을 인간 되게 하고, 인간을 독자적 존재로 만들며, 인간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학문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인문학에는 어떤 기능이 있는가. 요즈음엔 문학, 역사, 철학만을 인문학이라 하지만, 인문·사회·자연의 기초학문들을 통틀어 넓은 의미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도 미국에서는 인문·사회·자연의 기초학문들이 Liberal Arts College에 속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흔히들 인문학이라면 시를 짓고 문장을 암송하고 산천을 유람하는 조선시대의 풍류(風流)를 떠올리거나, 인문학을 교양과 같은 것으로 볼 뿐 별다른 기능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문학의 기능 중의 하나로 치유 기능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회 세계인문학포럼(201211월 개최예정)"치유로서의 인문학"을 주제로 하고 있는 데서도 치유가 인문학의 한 기능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문학 역사 철학은 각각 어떤 치유의 기능을 갖는가. 우선 우리는 문학이 시적 정의(詩的 正義), 다른 말로는 "권선징악"을 바탕에 깔고 있음을 알고 있다. 선이 끝내는 악을 누르고 승리하는 것을 통해 통쾌한 마음의 승화를 느끼게 된다. 나아가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詩學에서 문학의 기능으로 카타르시스(정신의 정화)를 들고 있다. 문학, 그중에서도 비극을 통해 환기된 나쁜 감정을 배설함으로써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 관한 학문이 아니다. 끝나버린 과거를 아는 일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과거를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로 삼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늘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역사적 해석은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역사에는 때때로 잘못되거나 미화된 판단 결정 심판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잘못된 결정으로 화를 입은 사람의 마음의 상처는 엄청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철학은 비판의 학문이다. 철학은 제자리에 있지 않고 늘 비판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다. 철학적 비판력은 학문 발전의 원동력인 것이다. 우리는 학문을 자유학예라고 하였다. 인간을 미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철학적 비판력인 것이다. 인간을 신화적 사고에서, 종교적 허상에서, 노예제도 신분사회 가부장제 군주제 등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사회적 인습과 제도를 개선해 나갈 원동력이 바로 철학적 비판력인 것이다.

우리는 문학적 상상력, 역사적 해석력, 철학적 비판력이 인문학의 기능임을 알 수 있다. 이 인문학적 기능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역사적 오판을, 불공정한 사회적 인습과 제도를 개선해왔던 것이다.

 

자유와 치유의 학으로서의 인문학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이 더욱 자유로워지고, 보다 공정한 사회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인문·사회·자연의 기초학문인 인문학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노력한 한국연구재단에 감사하며 격려와 경의를 표한다.

-한국연구재단 웹진 201210월호 논단에서 옮김

 

박영식 (1934 2013) 철학박사, 연세대 총장, 교육부 장관 역임

 

. 시 읽기

 

 

오래된 기도

이문재( 1959 - )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 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