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편지]
큰비에 쓰러진 나무를 보내드리고 또 하나의 느릅나무를 떠올립니다
★ 1,191번째 《나무편지》 ★
장마 끝나고, 이제 본격 휴가철입니다. 내일부터는 휴가 떠나는 분들로 길 위를 오가기가 불편하지 싶습니다. 그래도 무덥고 축축한 이 계절, 며칠만이라도 일상을 떠나서 몸과 마음을 충분히 쉬게 해 주어야 할 때입니다. 나무 이야기에 뭐 달리 휴가라는 게 있어야 할 이유가 없지만, 편하게 쉬시는 때에 굳이 피곤하게 해 드리지 않으려, 휴가 떠나기 전날 한낮에 “휴가 잘 다녀 오시라”는 인사 말씀으로 《나무편지》 띄워 올립니다.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나무는 〈정선 봉양리 느릅나무〉입니다. 얼마 전에 새로 천연기념물에 지정한 ‘정선 봉양리 뽕나무’와 가까이 있는 큰 나무입니다. ‘정선 봉양리 뽕나무’가 서 있는 정선군청 앞 ‘고학규 고택’에서 걸어서 십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정선중고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큰 나무입니다. 아, 참! ‘정선 봉양리 뽕나무’는 이번 장맛비를 맞고 큰 가지가 부러졌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정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래저래 정선 봉양리 소식이 궁금합니다.
〈정선 봉양리 느릅나무〉가 떠오른 건, 지난 오월 말에 비에 쓰러져간 ‘횡성 두원리 느릅나무’가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잊어지지 않은 까닭입니다. ‘횡성 두원리 느릅나무’는 그때 며칠 동안 이어진 비를 맞고, 비에 젖은 제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굵은 줄기 아래쪽이 맥없이 찢어지고 부러진 겁니다. 그 즈음인 5월 30일치 《나무편지》에 그 느릅나무의 옛 모습 사진을 담아 상세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나무편지》에 ‘횡성 두원리 느릅나무’ 소식을 전해드린 뒤에 횡성 두원리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위한 ‘꽃잠식’을 치렀다는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꽃잠’은 국어사전에 나오는 예쁜 표현으로 우리 옛 사람들이 불러온 ‘잠’의 여러 종류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전의 풀이를 보면 ‘깊이 드는 잠’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이라는 뜻을 가졌지요.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마을 살림살이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애쓴 ‘횡성 두원리 느릅나무’가 이제는 모든 수고를 내려놓고 편안히 영면에 들기 바란다는 뜻에서 ‘꽃잠식’이라 이름한 예를 치른 겁니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쓰러진 나무를 목제예술품으로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도 이어졌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오래 기억하고자 애쓰는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정성이 가슴 뭉클하게 전해온 소식이었습니다. ‘꽃잠식’ 소식은 느릅나무에 대한 생각을 오래 마음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진첩을 열고 느릅나무로 검색되는 나무들을 하나 둘 끄집어내 하나 둘 살펴보았습니다. 대개는 강원도 지역에서 만났던 느릅나무들인데, 그 가운데 먼저 눈에 띈 나무가 바로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정선 봉양리 느릅나무〉입니다.
한 자리에 함께 있는 정선중학교와 정선고등학교의 운동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정선 봉양리 느릅나무〉는 나무높이 27미터, 가슴높이줄기둘레 1.7미터의 300년쯤 된 나무입니다. 이 정도면 느릅나무로서는 매우 큰 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줄기의 규모가 조금 적기는 합니다만, 전체적으로 우람한 생김새는 훌륭합니다. 비바람에 쓰러진 ‘횡성 두원리 느릅나무’에 대한 안타까움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오래오래 더 잘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 이제 이 무더위를 피해 잠시나마 쉬어야 할 때입니다. 모든 일상에서의 부담 내려놓으시고, 평안하게 쉬시기를 바랍니다. 대개 월요일 아침에 띄우는 《나무편지》이지만 다음 주 월요일에 드릴 걸 미리 띄우고 잠시 쉬고 다다음 주 월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3년 7월 28일 한낮에 1,191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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