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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태풍 ‘카눈’의 흔적 남긴 〈보은 속리 정이품송〉과 〈구미 독동리 반송〉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8. 18. 14:44

[나무편지]

태풍 ‘카눈’의 흔적 남긴 〈보은 속리 정이품송〉과 〈구미 독동리 반송〉

  ★ 1,193번째 《나무편지》 ★

  별고 없으십니까. 제6호 태풍 ‘카눈’이 지나갔습니다. 한반도 중심을 통과하는 태풍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태풍이어서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던 듯해 다행이지 싶습니다. 모두 별고 없으시지요. 6호 태풍은 지나갔지만 대략 한 해에 태풍은 25 개 정도가 발생한다니, 아직은 안심할 단계는 아닙니다. 대략 25개의 태풍 가운데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건 대개 ‘가을 태풍’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니, 이번 6호 태풍을 견뎌낸 경험을 바탕으로 다가올 태풍을 잘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이번 태풍도 어김없이 큰 나무들에 그 흔적을 남겼습니다. 뉴스에 먼저 도착한 나무 소식은 〈구미 독동리 반송〉이었습니다. 사진에 보여드리는 것처럼 들녘에 홀로 서 있는 아름다운 반송입니다. 십 년 전의 봄 날, 이 나무 앞에서 저는 ‘파종기’라는 기계에 ‘모판’을 밀어넣는 일을 마을 농부들과 함께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무도 좋지만, 나무 곁에서 나이 많은 농부들과 함께 모내기 준비를 함께 했던 기억이 더 또렷하게 남아있는 나무입니다. 나무를 보고 싶기도 했지만, 모판을 밀어넣는 일을 제법 잘 했다고 칭찬하시며 “서울 사람도 써먹을 데가 있네.” 하시던 그때의 그 마을 어른들의 안부가 궁금해 몇 차례 더 찾아갔던 적이 있는 나무입니다.

  반송은 잘 아시는 것처럼 소나무의 한 종류로, 줄기가 땅에서 올라오면서부터 여럿으로 갈라져 부챗살 펼치듯 아름다운 수형으로 자라는 나무입니다. 소나무의 한 종류인 반송(盤松)은 하나의 줄기로 뻗어 오르는 소나무와 달리 뿌리 부분에서부터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지는 특징을 가져서 줄기와 가지가 구별되지 않습니다. 대개는 크게 자라기보다 넓게 퍼지며 아담한 크기로 자라지요. 가지의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서 ‘천지송(千枝松)’ 혹은 ‘만지송(萬枝松)’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곳도 많습니다. 아름다운 생김새가 보기 좋아 우리의 옛 선비들이 정원수로 키웠을 뿐 아니라, 조상의 무덤을 꾸미기 위해서도 심어 키워 온 우리의 소나무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나무 모습을 갖췄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인 나무가 반송인데, 이번 태풍 카눈의 모진 바람에 〈구미 독동리 반송〉의 여러 나뭇가지 가운데에 네 개의 굵은 나뭇가지가 완전히 부러져나갔다는 소식입니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완전히 쓰러져 생명을 잃은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나무 모습을 이루는 굵은 가지의 상당 부분이 부러져 지금 사진에서 보여드리는 것만큼의 아름다움은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게다가 나무의 상당 부분이 부러진 탓에 앞으로의 살 일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구미 독동리 반송〉은 우리나라의 모든 반송 가운데에 가장 아름답다 할 만한 몇 그루 가운데 하나입니다. 옛날엔 나무 곁으로 개울이 흘러서, 나무 그늘은 마을 사람들의 빨래터였다고 합니다. 세월 흐르면서 나무 곁 개울은 메워졌고,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뒤에는 나무 주위에 낮은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지만,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좋은 쉼터로 쓰입니다. 생전 처음 파종기 작동을 돕던 그 날도 마을 사람들이 새참을 나눠먹는 자리는 바로 나무 그늘이었지요.

  지금은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에 마을 이장이었던 조필형 님은 〈구미 독동리 반송〉이 자신의 조상이 처음 심고 대를 이어 지켜온 나무라고 이야기합니다. 크게 자라지 않는다는 특징에 비춰 보면, 이 나무는 비교적 높이 자란 편에 속합니다. 뿌리 부분에서부터 줄기가 10 여 개로 나뉘어지며 넓게 퍼지며 십삼 미터 높이까지 자랐습니다. 높이만 따진다면 이보다 훨씬 큰 반송도 있긴 하지만, 〈구미 독동리 반송〉만큼 풍성한 가지를 가지는 아름다운 반송은 흔치 않을 겁니다.

  〈구미 독동리 반송〉과 함께 이번 태풍 카눈의 피해를 받은 나무가 〈보은 속리 정이품송〉입니다. 정이품송은 태풍에 북쪽의 굵은 가지 두 개가 부러졌다고 합니다. 그렇잖아도 예전의 우아한 자태를 잃어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일으켰던 정이품송이 이번 태풍에 또다시 두 개의 큰 가지가 부러졌다는 겁니다. 사실 〈보은 속리 정이품송〉은 이미 건강을 잃고 거의 연명하다시피 하는 상태로 버티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생명을 잃을 만큼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워 수액주사를 놓는 등의 대책으로 겨우 버티며 살아있는 나무여서 태풍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바람막이 하나 없이 너른 들에 우뚝 서서 비바람 눈보라를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나무가 태풍에 부러지고 쓰러지는 건 하릴없는 일입니다. 앞에서는 완전히 쓰러져 죽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말씀드렸지만, 돌아보면 나무도 우리 생명 세계에서 여느 생명처럼 생로병사의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생명입니다. 오히려 부러지고 찢어지며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은 처참한 상태로 남은 나무를 바라보는 건 어쩌면 더 가슴 아픈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날 개면 우선 〈보은 속리 정이품송〉은 찾아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그의 곁에 오래 가만히 서있겠습니다.

  태풍 덕에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듯하지만, 그건 이번 주에 계속될 소나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또 폭염이 이어진다는 기상청의 날씨 예보입니다. 그래도 가을바람 불어온다는 ‘처서(處暑)’가 이제 열흘도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견디시면 맑고 아름다운 가을 오겠지요. 더 건강하게 이 여름의 끝을 평안히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2023년 8월 14일 아침에 1,193번째 《나무편지》 드립니다.

  - 고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