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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몸과 마음의 만병을 몰아내는 만병초 꽃에 담긴 치명적 화려함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6. 27. 14:41

[나무편지]

몸과 마음의 만병을 몰아내는 만병초 꽃에 담긴 치명적 화려함

  ★ 1,186번째 《나무편지》 ★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는 몇차례 예고해 드렸던 것처럼 5월 중에 화려하게 피어났던 꽃 ‘만병초’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미 시들어 떨어진 꽃 이야기로 《나무편지》를 쓰는 일은 여느 때만큼의 설렘이 동반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더구나 주중에 몇 곳의 숲을 찾아가 여러 종류의 여름 꽃을 보고온 뒤여서 더 그렇기도 합니다. 그렇기는 해도 다시 돌아보게 되는 봄꽃이 언제 다시 보아도 그저 좋기만 한 ‘만병초’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물론 내년 봄이면 다시 피어날 꽃이기야 하지만, 세상의 모든 꽃은 단 한번씩만 피어난다는 생각을 하자면 지난 봄의 만병초 꽃을 돌아보는 일은 지금 한창 꼬무락거리는 여름 꽃을 살피는 일만큼 즐거운 일입니다.

  진달래과에 속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인 만병초는 이름 하나만으로 솔깃하게 합니다. 만병초(萬病草) 라는 이 나무는 이름부터 흥미롭습니다. 또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우리의 옛 사람들이 나무에 남긴 우리 살림살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합니다. 만병초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칫 '만병의 근원이 되는 식물'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진달래나 철쭉을 닮은 꽃 여러 송이가 한데 뭉쳐 피어난 화려한 그 꽃의 생김새를 바라보자면 이처럼 아름다운 나무에 부정적 이름을 붙였을 리 없다는 건 금세 눈치챌 수 있습니다.

  만병초라는 이름은 거꾸로 이 나무가 만병을 다스리는 놀라운 효험을 가졌기 때문에 붙여진 겁니다. 실제로 만병초는 우리 한방에서 오랫동안 매우 귀중한 나무로 여겨왔습니다. 한방에서 만병초는 심장을 강하게 하고, 혈행을 도와 고혈압을 치료하는 효과를 가졌다고 합니다. 또 통증을 멎게 하는 효능도 있어서 통풍을 치료하거나 소염 진통 해열제로도 쓰였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만병(萬病)'을 운운할 건 아니겠지요. 만병초는 신장병을 비롯해, 관절염, 신경통, 귓병, 복통 등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질환에 골고루 적용해온 요긴한 약재로 오랫동안 쓰인 나무입니다.

  대개는 주로 잎을 약재로 활용했는데, 만병초의 잎을 끓여낸 물로 가축의 피부에 기생하는 벌레나 농작물 주위에 생기는 해충을 퇴치하는 데에도 주효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만병초의 잎을 달여 먹으면 여자의 정욕을 크게 향상시킨다고 해서, 여성불감증 치료제로도 쓰였습니다. 실제로 만병초의 잎에서는 안드로메도톡신이라는 유독 성분이 다량 검출되는데, 이 성분을 각각의 질환에 알맞춤한 양으로 적용할 때, 효험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안드로메도톡신은 잘못 쓰면 구토와 빈혈 설사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하니,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점도 꼭 함께 알아두셔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약이 그렇겠지만, 만병초 역시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이 되는 겁니다.

  만병초가 몸에 든 병을 쫓아내는 건 물론이고, 그의 아름다운 꽃이라면 마음에 든 병까지 너끈히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실제로 만병초의 꽃을 보면 괜한 호들갑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바라보면 볼수록 그 아름다움에 혼곤히 빠져드는 게 만병초의 꽃입니다. 꽃 한 송이는 앞에 이야기했듯이 진달래과에 속하는 철쭉이나 진달래의 꽃과 똑 닮았지만, 만병초의 꽃은 가지 끝에서 적게는 열 송이, 많게는 스무 송이 정도가 모여 피어나기 때문에 그 화려함을 따를 나무가 거의 없을 겁니다. 아마도 같은 계열의 나무 가운데에는 만병초가 으뜸이지 싶습니다.

  만병초의 효능을 지나치게 과장한 이야기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노인들이 만병초의 줄기로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 다니면, 중풍을 예방할 수 있다는 건데, 그건 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식의 효험이 크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때문이었을까요? 우리나라의 산에 자생하던 만병초가 지금은 희귀식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기후를 비롯한 환경 변화도 원인이겠지만, 만병초는 무분별한 남획이 지금의 멸종 위기를 초래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특히 만병초 종류 가운데에 우리나라에 오래 전부터 자생하던 ‘노랑만병초’는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식물 제2급으로 분류해 특별히 보호하는 식물이 됐습니다.

  꽃이 아름답다 보니, 만병초는 사람에 의해 선발된 품종도 당연히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만병초는 세계적으로 많은 종류가 있지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종류도 여럿 있지요. 물론 우리나라에는 약재로 쓰기 위해서 중국에서 들여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자생지가 곳곳에 있었습니다. 만병초는 아시아의 고산 지대에서 자생하는데, 우리나라의 남한 지역에서는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을 비롯해 울릉도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고, 북한 지역에서는 특히 백두산 지역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우리 토종 식물입니다. 대개는 높은 산에서 센 바람을 맞으며 자라다 보니, 그리 크게 자라지 못합니다. 대개 1미터 남짓 크기로 자라지만, 잘 자라면 3미터 넘게까지도 자랍니다.

  오늘 《나무편지》에 담아 보여드리는 사진들은 죄다 지난 5월 말께에 천리포수목원에서 담아온 표정들입니다. 천리포수목원의 만병초가 꽃잎을 여는 건 대개 4월 말 쯤부터입니다. 물론 올 봄처럼 나무들의 개화시기가 들쭉날쭉 망가진 경우라면 그 시기를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겠지요. 뭉뚱그려 이야기하자면 늦봄이라고 그의 개화시기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만병초 꽃의 절정기는 그러니까 5월 중순에서 하순까지로 보시면 거의 틀리지 않을 겁니다. 화려하게 피었던 목련 종류의 꽃들이 지고난 바로 그 시기입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다양한 종류의 만병초 품종을 모아 두었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꽃차례의 생김새는 서로 비슷하지만, 빛깔과 분위기는 묘하게 서로서로 다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러한 것처럼 똑같은 색깔, 똑같은 분위기의 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에 든 만병(萬病)을 모두 내쫓아낼 만큼 예쁘고 아름다운 만병초 꽃, 이미 시들어 떨어진 지 많이 지났지만 사진 속의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루 아침이 상큼해지는 듯한 느낌의 꽃입니다.

  장마 시작된 월요일 아침입니다. 궂은 날씨에 사진 속의 만병초를 오래 바라보시면서 만병을 몰아내고 몸과 마음 모두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2023년 6월 26일 아침에 1,186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