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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꽃 문신 / 황영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6. 5. 16:52

꽃 문신

 

황영애

 

 

딸아이는 세상에 없는 문신을 가지고 있다

찬란하고 슬펐다

우울한 비밀을 집안 살림도구에 털어놓았다

그들은 한꺼번에 눈물을 쏟았고

비밀이 아닌 날이 되었다

나는 세상의 없는 말로

눈부신 아픔을 대신하고 싶었다

 

비운을 개척한 영롱한 눈물이

몸에 무늬를 만들었다

애처롭도록 그윽했다

나는 매일 아이의 들숨으로 들어가

통증을 어루만졌다

꽃의 무게가 느껴졌다

 

메스가 지나간 길을 따라 꽃수를 놓을까

상처의 자국을 한 뜸 한 뜸 꽃의 환유로

뼈보다 단단한 마디를 새기듯

간절하게, 진정 간절하게

 

 

 

상처는 목숨보다 가볍지요

 

살면서 타인의 고통은 늘 내 고통보다 뒷전이고 작게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일은 일순 지나는 일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짊어져야 하는, 추억으로 치환되지 않는 화석 같은 현실도 있습니다.

 

아무리 큰 상처라도 상처는 목숨보다 가볍지요. 누군가의 목숨 값으로 얻은 상처라면 그건 상처가 아니라 “찬란하고 슬”픈 훈장입니다. 오랫동안 삶의 “무게가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의 상처가 꽃이 되었다고 시인들은 노래하지만 하나의 상처를 만들기까지 그리고 그 상처가 다시 꽃으로 치환되기까지 “비운을 개척한 영롱한 눈물”의 수고가 있었을 것입니다.

 

바람만 스쳐도 아픈 상처가 아니라 눈길만 닿아도 화사한 ‘꽃 문신’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문신이 아닙니다. 자기희생과 헌신의 신념을 품지 않았다면 새길 수 없는 빛나는 훈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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