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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개 같은 사랑 / 최광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5. 26. 15:37

개 같은 사랑

                    

최광임

 

 

대로를 가로지르던 수캐 덤프트럭 밑에 섰다

휘청 앞발 꺾였다 일어서서 맞은편 내 자동차 쪽

앞서 건넌 암캐를 향하고 있다, 급정거하며

경적 울리다 유리창 밖에 개의 눈과 마주쳤다

저런 눈빛의 사내라면 나를 통째로 걸어도 좋으리라

거리의 차들 줄줄 밀리며 빵빵거리는데

죄라고는 사랑한 일밖에 없는 눈빛, 필사적이다

폭우의 들녘 묵묵히 견뎌 선 야생화거나

급물살 위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 같은, 지금 네게

무서운 건 사랑인지 세상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간의 생을 더듬어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은 눈

단 한 번 어렴풋이 닮은 눈빛 하나 있었는데

그만 나쁜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 밤, 젖무덤 출렁출렁한 암캐의 젖을 물리며

개 같은 사내의 여자를 오래도록 꿈꾸었다.

 

 

 

저런 절절한 눈빛을 가진 개 같은 사내라면

 

최광임 시인은 “나를 먼저 보이고 나를 먼저 낮추어 상대를 향해 극진하지 않으면 어떤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어느 글에서 설파하였습니다. 지극히 맞는 말이지요.

 

흔하디흔한 욕 중에 '개'가 들어가고, 흔하디흔한 꽃 이름에도 '개'가 들어갑니다. 심지어는 떡에도 개떡이 있습니다. 쑥을 더하면 쑥개떡, 콩을 더하면 콩개떡. 여러 저급한 내용을 말할 때 개가 들어가다 보니 이 글의 제목만 보면 언뜻 저급한 사랑을 말하려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렇기에 더 절절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이 시에서는 자신의 고통보다 앞서 길을 건넌 암캐에 대한 지극한 갈증이 절절하게 묻어나고 있습니다. 목숨도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말이지요. 꺾어진 앞발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는 듯. “나를 먼저 낮추어 상대를 향해 극진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냥 개 같은 사내가 아니라 저런 절절한 눈빛을 가진 개 같은 사내라면 누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무서운 건 사랑인지 세상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 그 간의 생을 더듬어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은 눈”을 볼 기회가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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