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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간단하다 / 임강빈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5. 19. 13:59

간단하다

 

임강빈

 

 

검은 리본속사진

입언저리 파르르 떨며

무언가 말을 할듯말듯하다

 

땅을 파고

하관하고

마지막을 햇살이 덮어버린다

 

누군가 나직이 말한다

착한일 많이 했으니

좋은 곳으로 갔을거야

 

간단하다

일생이

너무나 간단하다

 

 

 

삶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잠 못 든 밤이 얼마였으며, 살아보겠다고 타인의 삶에 뱉은 침은 또 얼마겠으며, 알게 모르게 지나친 타인의 고통들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치열하다 못해 치졸하기도 했을 삶이 경계를 넘는 순간 남겨진 무수한 이야긴들 무슨 소용 있을까요.

 

돌아보면 별 것 아닌 일에 고봉의 의미를 쌓아가며 목청 높이지 않았을까요.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오해의 새끼를 꼬지 않았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지구 어느 모퉁이에서는 서로 살겠다고 죽음의 전쟁을 일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을 터.

 

“땅을 파고 / 하관하고 / 마지막을 햇살이 덮어버”리고 나면 “간단하다 / 일생이 / 너무나 간단”한 것이라고 눈물을 닦으며 입을 모읍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 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우리 삶은 그닥 변하지 않습니다. 내 삶을 평가하기엔 내가 아직 어리석기 때문일까요. 죽어서도 “입언저리 파르르 떨며 /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는 삶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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