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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치매 / 이승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5. 9. 17:35

치매

 

이승하

 

 

‘까꿍’이란 말을 내게 처음 가르쳐주신 어머니

“까꿍!” 하고는 웃으신다

나는 돌아서서 운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

 

 

어버이날이 되니 온라인 세상에서는 온통 심순덕 시인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라는 제목의 시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중략)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 어머니를 본 후론.... // 아!..... //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로 끝을 맺는 이 시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탈무드의 격언처럼 신의 영역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당연히 품어낼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세상을 알기 전까지는.

 

반면 공광규 시인은 “술병은 잔에다 /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 속을 비워간다 //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 길거리나 /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 문 밖에서 /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 나가보니 /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 빈 소주병이었다” 라고 ‘소주병’이라는 시에서 어머니와 다른, 잔으로 은유된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드러나지 않는 헌신을 이야기 합니다.

 

우스개소리로 우리는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을 합니다. 더구나 치매까지 앓게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까꿍’이란 말을 내게 처음 가르쳐주신 어머니 / “까꿍!” 하고는 웃으“시는 것을 보며 돌아서서 슬픈 눈물을 떨구지 않을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적어도 부모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은 자식이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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