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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 오규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4. 28. 17:27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오규원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 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속삭이는 악마의 지배를 받는 시간

 

젊어서는 숨 쉬는 일과 잠자는 일이 제일 쉬운 일인 줄 알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숨을 쉴 수가 없다’는 주변의 이야기와 여러 가지 이유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고달픈 삶 때문이기도 하겠고, 지병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아직도 귀만 대면 잠들곤 하는 나는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느 날 일이 잘못되고 불면의 밤을 보내보고서야 뜬 눈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불면의 긴 시간은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잡념으로 얼룩진 부정적인 생각이 대부분입니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 하지만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이는 불면의 시간은 부정을 극대화 하는 쪽으로 가속할 뿐입니다. 가끔은 죽음과 더욱 가까워지는 시간이기도 하고, 반성의 시간이 아닌 “이왕 잘못 살았으면 /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속삭이는 악마의 지배를 받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근심과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삶이 있을까요. 삶을 이어가는 한 피할 수 없는 짐들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내일에 대한 희망과 오늘의 용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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