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박 찬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생각이 무슨 솔굉이처럼 뭉쳐
팍팍한 사람 말고
새참 무렵
또랑에 휘휘 손 씻고
쉰내 나는 보리밥 한 사발
찬물에 말아 나눌
낯모를 순한 사람
그런 사람 하나쯤 만나고 싶다
어떤 삶이 만만하고 부드럽던가요
솔굉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부러지고 잘려나간 제 상처를 보듬기 위하여 굳어졌을 뿐인데요. 그럼에도 그건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삶이 만만하고 부드럽던가요. 어떤 생이 온전히 따뜻하고 안온하던가요.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단 말인가요.
평생 폐지를 주워 모은 재산을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고 기부하는 허리 굽은 노인이 어찌 상처가 없겠습니까. 어떤 이는 상처를 가슴에서 키우지만 그 노인은 필시 굳은 상처를 떼어내 삶의 절구에 곱게 빻아 바람에 날려 보냈을 것입니다.
바람이 날카로워지니 “또랑에 휘휘 손 씻고 / 쉰내 나는 보리밥 한 사발 / 찬물에 말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더 기다려집니다. 아니 누군가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해가 가기 전에 “그런 사람 하나쯤”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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