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0] 모호한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기준은 학습된다. 이는 인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이나 이유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청소년기엔 귀여운 이성에게 끌렸는데 장년기엔 다른 매력이 더 중요해질 수 있는 것처럼 경험치가 기준을 변화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경험치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축적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개인이 어떤 대상에 대해서 아름다운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는 타고난 요소도 작용을 하게 된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래적 기준은 대체로 인간의 생존에 유리한 경우에 적용된다. 특정 인물이나 환경이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고 판단하면 그 대상을 아름답다고 여길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러한 미적 판단은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하지만, 무의식 수준에서 거의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어린아이가 자신을 잘 돌봐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을 향해 반사적으로 미소를 짓는 것도 그러한 예다. 적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은폐할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갖춘 풍경을 만나면 감탄하는 것도 오랫동안 인류에게 내재된 생존에 관한 경험이 아름다움의 기준을 학습시킨 결과이다.
문제는 생존에 유리한 조건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성필 작가의 ‘그라운드 클라우드(2005, 2015)’ 연작은 유동적으로 대립하고 변화하는 아름다움의 조건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사진에 찍힌 지역은 프랑스의 루아르 밸리인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성들과 와인 생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포토샵으로 쨍하게 만든 것처럼 보이는 풍경은 전혀 보정(補正)을 하지 않은 것이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수직 구름이 긴장감을 자아낸다. 평화로운 언덕 너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위로 곧게 치솟은 구름은 원자력발전소가 뿜어내는 수증기다. 유난히 바람이 없는 날씨 탓에 수직선에 가까운 형태로 포착되었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면 수증기가 어지럽게 흩어지면서 공포감을 주는 모양새를 드러내기도 한다. 원자력발전 중에 나오는 수증기는 대기 중의 구름과 유사한 성분이지만 ‘자연적이지 않다’는 면에서 복잡하고 미묘한 정서와 사고(思考)를 발화시킨다. 사진은 원전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모호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의 조건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준다. 이것이 우리 시대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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