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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마음으로 사진 읽기

[28] 성곽이 있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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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8] 성곽이 있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7.08. 03:00
 
 
 
 
 
 
                                                                            오한솔, 창신동의 저녁, 2017,

 

휴가철이 다가온다. 휴가에 관한 연구들이 공통되게 보고하는 바에 따르면, 휴가가 주는 행복감은 휴가 중이나 휴가 후보다 휴가를 가기 전에 가장 크다고 한다. 휴가를 상상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을 떠올리면 언제라도 즐겁지만, 휴가지에서 몸과 마음을 쾌적하게 유지하고 일상으로 복귀해서도 충전의 효과를 느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확신이 줄어든다.

 

일상생활 중에 휴가와 같은 시간을 짧고 반복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면 어떨까. 취미보다는 조금 더 진지하게, 일년에 한두번 가는 휴가보다는 조금 더 가볍게, 나를 들뜨게 만드는 일을 찾는다면 설렘 가득한 일상도 가능할 것 같다. 푸른 눈의 한국 문화 전도사로 알려진 오수잔나(64) 대성그룹 고문은 한양도성 투어의 자원봉사 해설가로 활동한다. 그를 따라서 다녀온 성곽길 투어는 서울 태생인 나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육백년이 넘은 서울의 시간에 압도되기도 했지만,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밥벌이와 무관한 열정’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기억을 만들었다.

 

오한솔 작가는 계획을 잘 세운다. 어디에서 무엇을 바라볼지를 계획하는 건 기본이고, 원하는 하늘의 밝기와 구름의 양까지 미리 생각하고 촬영을 나선다. 낮과 밤이 공존하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 일몰 시간에 맞춰 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 후 철수하기까지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원거리의 풍경을 주로 촬영하는 그가 서울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특히 시간을 많이 쓰는 일은 개방된 옥상이나 전망대를 찾는 거라고 한다. 이 또한 당연히 사전에 준비하고 결정한다. 사진은 찍은 사람의 생각과 작업의 과정을 그대로 담아낸다. 정직하고 담백한 창신동 풍경은 치과의사이자 진지한 생활사진가인 그의 일상으로 파고든 설렘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 아름답게 반짝인다.

 

노을과 조명이 함께 물들인 오렌지 빛 성곽과 마을 풍경은 그곳에 켜켜이 쌓인 욕망과 좌절을 상기시킨다. 너무 오래돼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도시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나를 위한 계획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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