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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눈물 / 김남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4. 7. 14:00

늑대의 눈물

 

김남권

 

  

수컷 우두머리가 죽었다

암 늑대는 다른 무리의 늑대를 피해 가능한 멀리 떠나야 한다

하루 백 리가 넘는 숲을 가로질러

오스트리아를 지나 몽블랑까지 며칠 만에 천 킬로를 이동했다

큰수염수리가 따라오는 폭설 한가운데를

죽을힘을 다해 뛰어온 암 늑대는

따뜻한 은신처를 찾아 새끼를 낳았다

스라소니 한 마리가 다가왔다

그도 늑대처럼 다섯 마리의 새끼가

작은 굴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냥을 포기하면 새끼들이 굶어야 한다

어미는 새끼들이 아, 하고 입 벌린 채

굶고 있을 때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알프스의 밤이 깊어 가고 늑대 새끼도 스라소니 새끼도

어미의 귀가를 기다리며 속절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암 늑대는 공중 깊숙한 곳의 달을 쳐다보며

숲의 정령을 포기한 채

마른 울음을 울어야 한다

 

 

 

어미에겐 절망을 즐길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일까요.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고 자식을 죽이는 엄마가 있습니다. 그나마 강보에 쌓인 아기를 남의 집 대문 앞에 놓고 간 엄마는 다행스러워 보입니다.

가부장제와 남성권위주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 시대 어머니들에겐 “수컷 우두머리가 죽었다”는 것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절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미에겐 절망을 즐길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새끼들이 아, 하고 입 벌린 채 / 굶고 있을 때 /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허기진 배를 쥐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어미의 귀가를 기다리며 속절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그 때 어머니도 “숲의 정령을 포기한 채 / 마른 울음을 울”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이런 슬픈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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