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가성비’로는 품질과 만족도 따지지 말길
'불황이 오래가고 실질 가계소득이 줄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점점 많은 사람이 해외여행을 즐기고 있다. … 가격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품별로 꼼꼼히 비교하기에, 경기가 나쁠 때 가성비 높은 해외여행을 오히려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 여행이 아니라 '가성비' 얘기다. 몇 년 새 부쩍 많이 쓰는 신조어로 '가격 대비 성능'을 줄인 말이다. 그런데 성능(性能)도 성능 나름. '여행의 성능'은 몹시 거북하다. 주로 기계, 넓게 잡아 어떤 물건의 성질·기능이 성능이니 여행하고는 거리가 멀다.
흔히 대상으로 삼는 음식도 그렇다.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는 가성비는 불황 속 시대정신이나 마찬가지. 30종 넘는 쌈채소와 … 삼겹살까지 곁들인 한 상을 받으니 솔직히 뿌듯했다. 강남 한복판에서 9000원에 이토록 푸짐한 식사를 할 줄이야.'
아무리 물건이라지만 음식의 성능이라니. 너무 나갔다. 만족도란 말이 버젓이 있는데.
웬만큼 알아듣는데 굳이 옳으니 그르니 까탈 부려야 할까. 멀쩡한 말이 턱없이 힘쓰는 말한테 차여 다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와 대안(代案)이 함께 담긴 예문을 보자.
'(립스틱) 퍼스널 컬러 열풍은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문화와도 연관돼 있다. … 자기 특성에 딱 맞는 물건을 구입하면 두고두고 효용이 높기 때문이다.'
립스틱은 너그럽게 보면 좀 어정쩡한데, 효용(效用) 같은 말이 어울리겠다. 이렇게 대상 따라 효과, 만족도, 품질처럼 알맞은 말이 얼마든 있다. 무턱대고 가성비라 하느니 가효비, 가만비, 가품비 하면 어떤가. '혼밥' '혼술'까지 튀어나온 마당에. 아니면 그냥 '비용 효과(효율)'라 할 수도 있겠다. 물론 한사코 줄여 써야 하는지부터 되짚어볼 일이다.
가성비가 기고만장하면 어찌할꼬? 순배는 영영 죽어지내야 하나? 괜한 걱정일 것이다. 어차피 운명은 언중(言衆)의 힘과 뜻에 달렸으니. 그래도 응원하고 싶다. 흥청망청하지 않는 풍류(風流)를 그리며. 힘내라 순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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