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맞다 게보린'은 안 맞는다
이러구러 한 10년, 총천연색 화면에선 노래 대신 글귀가 귀를 잡아당겼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사나이 대장부가 울긴 왜 울어,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특히 짧고 강렬하기로는 '맞다 게보린'이 으뜸 아니었을까. 오래도록 사람들 머릿속에 남은 비결은 '맞다'였을 터. 한데 이 말에 비밀 아닌 비밀이 있다. 광고주한테는 은인이되 우리말에는 무법자, 정체(正體)가 뭐기에.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진 검사장이 지시해 내사하다 종결된 것은 맞다. … 일감을 주라고 진 검사장이 먼저 요구한 것이 맞는데 이는 그가 내사 종결 대가를 요구했다는 얘기가 된다.'
똑같이 '틀림없다, 사실이다' 하는 뜻으로 썼다. 동사(動詞)의 현재 시제(時制)를 나타내는 '는'이 있느냐 없느냐 차이다. 형용사(形容詞)라면 '맞다, 맞은데'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맞다'는 몰라도 '맞는데'가 옳음은 확실하다. 동사라는 얘기다.
어미(語尾)를 달리해 보자. '맞다가 맞는지 맞는다가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맞는지' 대신 '맞은지'와 견주면 답이 나온다. 역시 동사라는 증거다. '맞는 얘기/맞은 얘기' '답이 맞는데/답이 맞은데'처럼 대봐도 마찬가지. 그러니 '맞다'가 아니라 '맞는다'로 써야 맞는다.
유독 '다'와 어울릴 때 형용사인 양 '맞다, 맞다면' 해야 자연스럽게 여긴다. 입과 눈과 귀에 너무나도 익은 탓이리라. 그렇다고 멀쩡한 남 이름을 멋대로 바꿔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진통제 광고의 진통 아닌 마취 효과에서 이젠 깨어났으면 싶다.
노랫말처럼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 그 건너에서 친구가 황금박쥐 한다고 소리치면 쭈뼛대며 가서 보던, 마침내 여섯 식구 앉기도 빠듯한 안방을 비집고 들어선, 그건 바보상자가 아니라 이래저래 요술 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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