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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한가운데 폭 3㎞ 바닷길… 왜 괴물신화와 마피아가 탄생했을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3. 6. 14:16

[주강현의 해협의 문명사]

지중해 한가운데 폭 3㎞ 바닷길… 왜 괴물신화와 마피아가 탄생했을까

주강현 해양문명사가·前 제주대 석좌교수
입력 2023.03.06 00:10업데이트 2023.03.06 10:17
 
 
 
 
 

 

 
 

시칠리아 동북쪽 메시나와 이탈리아 남동쪽 칼라브리아는 메시나 해협으로 이어진다. 좁은 지점은 불과 3.1㎞에 불과하나 최대 깊이 250여m에 해류가 소용돌이치므로 만만한 해협이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바다 괴물 스킬라와 카비르디스 때문이라고 한다.

메시나 해협에 님프 스킬라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티레니아해의 맑은 바닷물에서 수영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글라우코(Glauco)라는 청년 어부를 만났다. 글라우코는 요정에 매혹되어 미친 듯이 사랑에 빠졌다. 어부는 스킬라의 심장을 뚫는 데 도움을 얻으려고 마법사에게 갔다. 사악한 마법사는 매력적인 청년을 보고 그만 사랑하게 되었고,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아름다운 스킬라를 6개 머리와 12개 발을 가진 괴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스킬라는 메시나 해협의 칼라브리아 해안이 시칠리아를 향해 뻗어 있는 동굴에 몸을 숨겼다. 메시나 해협에서 많은 배가 난파하는 등 험난한 이유가 이런 데서 비롯된다고 믿어진다.

메시나 해협에 도사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배들을 난파시켰다는 괴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의 이야기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소재로 활용돼 왔다. 2021년 발표된 헤비메탈 밴드 아크로아시스의 앨범 ‘일리언(트로이의 다른 이름)’의 표지(왼쪽 그림). 수록곡 중 한 곡의 제목이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이다. 오른쪽은 마피아 가문의 일대기를 그린 마리오 푸조의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 대부 1편 포스터. 메시나 해협은 마피아의 뿌리 격인 시칠리아 자위 조직원들이 이탈리아 본토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는 통로 역할을 했다 /스포티파이·아마존

‘일리아드’의 호머와 로마의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쓴 베르길리우스가 전해주는 신화에는 반대편 동굴에 아름다운 님프 카리브디스가 살았다. 그녀는 여리고의 소 떼와 함께 해협을 통과한 헤라클레스의 소를 훔쳐 먹어치웠다. 제우스는 그녀를 벌하기 위해 끔찍한 괴물로 만들었다. 그녀는 바닷물을 빨아들였다가 하루에 세 번 격렬하게 토해내어 해협을 항해하는 배를 난파시켰다. 이러한 이유로 고대에는 모든 선원들이 양쪽 해안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 항해했다.

 

바다 신화는 당대의 자연지리와 역사 조건을 두루 반영한다. 상대편이 빤히 보이는 이 좁은 해협은 지중해 중앙에 위치하여 동지중해와 서지중해를 매개한다. 북쪽의 티레니아해와 남쪽의 이오니아해도 메시나 해협을 통하여 연결된다. 두 바다가 좁은 물목에서 만나면서 심하게 용틀임쳐서 배를 잡아먹는 현상을 고대인은 바다괴물 신화로 그럴 듯하게 포장했을 것이다.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실러도 메시나의 좁지만 장엄한 해협에 관한 시를 헌정했다.

 

좁은 해협이지만 이탈리아반도와 시칠리아섬을 구분 짓는 결정적 조건이었다. 해협은 대륙에 붙은 반도와 섬을 가르는 자연적 격절이자 문명사적 경계였다. 그래서 오늘날도 시칠리아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질문에 이탈리아라 답하지 않고 시칠리아라고 한다. 이탈리아에 속하지만 정신적으로 독립된 섬이란 뜻이다. 19세기 중엽에 통일 이탈리아에 편입되기는 했지만 그들의 독립적 정체성은 선명하기 이를 데 없다. 큰 섬이지만 섬은 섬이기 때문이다.

반도와 섬을 연결하려는 노력은 고대로부터 구상되었다. 로마인이 배와 통으로 만든 다리를 고려한 이래로 12세기에도 다시 다리 연결 구상안을 내놓았다. 19세기에도 다리와 터널을 놓는 시도는 이어졌다. 1990년대에도 현수교를 놓는 계획이 수립되었다가 2006년에 취소되었고, 2009년에는 베를루스코니 총리 정부가 다시 교량 비용을 약속했다. 그러나 2013년에 다시 취소되기에 이른다. 반복되는 다리와 터널 구상, 반복되는 취소는 이 좁은 물목의 범상치 않은 조건과 관련 있다.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서 떠난 페리는 북상하여 나폴리로 들어간다. 베수비오 화산을 바라보면서 들어가는 항로다. 마찬가지로 나폴리를 떠난 배는 메시나로 들어가면서 시칠리아 북동쪽에 솟구친 에트나 화산을 바라본다. 꿈틀대는 화산대의 경계선에 자리 잡은 메시나 해협은 치명적 지각 변동을 고려하면 좁은 해협이라고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미국의 작가이자 역사가인 아서 스탠리 리그스는 20세기 전반에 쓴 ‘시칠리아 풍경’에서 메시나라는 도시에서 해적의 고향, 산적의 중심지, 돌격하는 노르만인의 첫 번째 영광스러운 정복지라는 역사의 진홍색 페이지를 볼 수 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1908년 12월 28일에 끔찍한 지진이 잠들어 있던 해협 도시 메시나를 덮쳤다. 궁전과 교회, 호텔과 상점이 심하게 파괴되고 도시의 절반이 파묻혔다. 메시나에서만 7만7000여 명이 죽었다. 그전에도 이 해협에서 다양한 포위 공격이 이루어졌고, 심지어 몽골제국 시대의 범람하던 페스트도 이 해협을 통하여 당도했다.

 

해협은 인간에게는 단절이지만, 동물에게는 소통의 창구이기도 하다. 메시나 해협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해양생물이 지나다니며, 심지어 심해어까지 존재한다. 수중에서만 생물 이동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는 조류가 이동하는 새들의 고속도로이며, 매년 300여 종이 넘는 새들이 북유럽 번식지에 도달하기 위해 해협을 건넌다. 독수리와 플라밍고, 따오기, 황새 등이 쉽게 관찰되는 해협이다. 해협은 동식물에게는 소통의 노둣돌이기도 하다.

 

지난 세기에 걸쳐서 이탈리아는 가난한 남부와 부유한 북부로 나뉜다. 이탈리아 남부에서도 시칠리아는 한결 더 가난했다. 그 가난 속에서 마피아가 탄생했다. 역사학자 홉스 바움은 그의 명저 ‘원초적 반란’에서 시칠리아의 마피아 발생을 노르만족, 아랍족 등 다양한 이질 세력의 침략과 흡수 과정을 관통하면서 만들어진 주민들의 자위 조직을 겸한 오랜 천년왕국운동과 연결지었다.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유럽 소외 지역 민중운동의 모든 형태를 다루면서 마피아가 단순 폭력 조직이 아니라 어떤 메시아적 운동의 성격을 품었다고 지적한 것이다. 해협을 건넌 마피아는 대륙으로 건너갔고, 다시 이민객에 묻어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대부’같은 영화도 바로 바다를 건넌 사람들의 역사였다. 이처럼 섬과 대륙은 아무리 가까워도 ‘해협의 운명’이라는 틀을 쉽게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