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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기독교 세계관의 지도 ‘마파 문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3. 7. 13:11

중세 유럽이 그린 세계지도… 아시아 동쪽 끝엔 ‘에덴동산’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86] 기독교 세계관의 지도 ‘마파 문디’

입력 2023.03.07 03:00업데이트 2023.03.07 06:44
 
 

 

 
 
 
 
 

세계지도는 그것을 제작한 사회나 문명권이 세상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다. 중세 유럽에는 마파문디(Mappa Mundi)라고 부르는 독특한 유형의 세계지도가 있었다. 세계(mundi)를 그린 도표(mappa)라는 의미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이므로 중세 유럽인들이 생각한 인간 거주 지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세 대륙이다. 지도상의 위에 아시아, 아래 왼쪽에 유럽, 아래 오른쪽에 아프리카를 배치했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방위와는 차이가 나서, 위가 동쪽이고, 아래가 서쪽, 오른쪽이 남쪽, 왼쪽이 북쪽이 된다. 이처럼 동방(Orient)을 어디에 두느냐가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의 원뜻인데, 중세 지도는 위를 동쪽으로 삼았다(반면 이슬람권의 지도는 흔히 남쪽을 위에 두었다).

 

마파문디에서는 큰 물길 셋이 대륙을 가른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를 흐르는 돈(Don)강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이를 흐르는 나일강이 만나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의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렇게 세 물길이 T 자를 이루고, 이 전체를 거대한 대양(Ocean)이 O 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어서 이런 지도를 ‘T-O 지도’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전체 모습이 바퀴 모양이라고 하여 ‘바퀴 지도(Wheel Map)’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 대륙에는 기독교적 신화가 덧칠되었다.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이 각각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살게 되었고, 오늘날 이 대륙의 주민들이 그 후손이라는 것이다.

13세기에 만든 유럽의 세계지도 - 13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마파문디인 에프스토르프 지도. 가로세로 각 3.6m의 사각형에 텍스트 1500개와 그림 845개가 들어가 있다. 지도의 구성과 배치 방식을 보면 ‘세상은 그리스도의 일부이며 그리스도가 세계를 온전히 유지하는 근간’이라는 기독교 중심 세계관이 투영돼 있다. 원본은 2차 대전 당시 소실됐다. 에프스토르프는 1830년경 이 지도가 발견된 니더작센주의 수도원 이름이다. /위키피디아

마파문디는 1000점 이상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부분은 서책 내의 삽화 형태고, 독자적 지도 형태는 200여 점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 명품으로 에프스토르프 지도(Ebstorf map)가 있다.

이 지도는 13세기에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이나 더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1830년경 니더작센주의 에프스토르프 수도원에서 발견되어 이곳 이름을 따서 에프스토르프 지도라고 부른다. 왜 이런 명품 지도를 수도원 내부에 꽁꽁 숨겨두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종교개혁 이후 그전 가톨릭의 산물이 눈에 띄지 않도록 조치한 게 아닌가 추측한다. 발견 당시 일부는 쥐가 쏠아 없어졌고 일부는 지워진 상태였으나 이후 기술적으로 잘 복원되었다. 불행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10월 연합군의 하노버 폭격 당시 불에 타서 원본은 사라졌다. 이전에 세밀한 팩시밀리 사본을 마련해 둔 게 불행 중 다행이다. 이 지도는 가로, 세로 3.6m의 사각형 안에 원형으로 그려진 대형 작품으로서 다른 마파문디에 비해 매우 크고, 그 안에 1500개의 텍스트와 845개의 그림(건물 500동, 강·호수·바다 160곳, 섬 60곳, 45민족, 동물 60종 등)이 있어서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상세히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지도의 제일 위쪽, 즉 동쪽 끝에 예수의 얼굴, 왼쪽과 오른쪽(남쪽과 북쪽)에 예수의 손이, 아래 서쪽에 예수의 발이 그려져 있고, 중심부 아래쪽에 위치한 시칠리아는 예수의 심장 모양이다. 이는 이 세상이 그리스도의 일부이며 그리스도가 세계를 온전히 유지하는 근간이라는 뜻이다. 지도는 단순히 산과 강, 도시와 민족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하는 객관적 지리 정보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구현되는, 의미로 충만한 곳임을 나타낸다. 그런 관점에서 중요한 사실은 지구의 중심(omphalos, 배꼽) 부분에 예루살렘이 있다는 것이다. 지도상의 텍스트가 설명하듯이 예루살렘은 세계를 굽어보는 최상의 도시이며, 그 안에는 부활한 예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다시 말해 인류 역사의 중심 사건이 일어난 곳임을 나타낸다.

기독교 세계관에 변화를 준 십자군 원정 -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18세기 이탈리아 태피스트리(다채로운 염색 실로 짠 직물) 연작 ‘해방된 예루살렘’ 중 십자군 진군을 묘사한 장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지도 곳곳에는 성경의 모티브들이 있다. 예수의 얼굴 바로 옆에는 에덴동산이 있어서 여기에 아담과 이브, 선악과와 뱀이 그려져 있다. 지도에 에덴동산을 그리는 게 과연 옳은가? 현재 우리는 에덴동산이 지상 어딘가에 실제 존재하는 현실의 ‘장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던 당시에는 “여호와 하느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창세기 2장8절)라고 성경에 쓰여 있는 만큼 아시아 동쪽 끝에 에덴동산을 실제로 그릴 수밖에 없었다. 네 강(나일, 갠지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의 원류가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왔다가 땅 밑으로 들어가 복류(伏流)한 다음 각각의 강의 근원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렇게 에덴동산은 우리가 사는 이 땅과 관련을 맺는다.

 

그 외에도 노아의 방주,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인, 시나이산, 바벨탑 같은 구약의 내용과 베들레헴, 나자렛, 가나, 겟세마네 같은 신약상의 장소들도 표현되어 있다. 그다음으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이나 십자군 관련 장소들, 카르타고와 같은 중요 역사 사건의 도시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이어서 유럽 지역을 보면 파리, 사라고사, 로마, 아테네, 뤼네부르크 같은 현실 도시들이 그려져 있다.

이 지도를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읽어 내려가면 지상낙원에서 출발하여 구약과 신약의 중요한 내용들, 이어서 역사상 주요 사건을 차례로 볼 수 있고(이슬람 관련 사건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도달점에는 당시 유럽의 국가와 도시들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이 지도는 단순히 이 세상 모습을 평면 위에 나타낸 게 아니라 인류의 탄생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온 인류사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으니, 말하자면 세계의 ‘공간’을 표현한 게 아니라 종교적으로 해석한 세계사의 ‘시공간’을 시각화한 셈이다. 이런 점에서 지도 위가 동쪽 방향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게 아니다. 위쪽 방향은 종교적, 도덕적 우월성의 표현이다. 예수의 얼굴과 에덴동산이 위치해 있는 숭고한 곳에서 인류가 아래로 흘러내려 왔다는 것은 역으로 우리가 언젠가는 다시 저 위쪽에 있는 낙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염원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지도상에는 또한 수많은 동물과 괴물 형상도 등장한다. 각지에 코끼리, 기린, 곰, 사자, 말, 사슴, 뱀, 악어, 앵무새, 개미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때로 동물에 대한 설명 중에서도 종교적 상징을 띠는 것도 있다. “펠리컨은 이집트의 새인데, 어린 새끼들을 죽이고는 사흘 동안 애통해하다가 자신의 피로 부활시킨다.” 다시 말해 펠리컨은 예수의 상징이다.

반면 흉측한 모양을 한 신화상 인간과 괴물도 있다. 용 같은 상상 동물 그리고 아마조네스의 인간들, 혹은 ‘동굴 거주인(trogodytes)’이나 ‘뱀 먹는 사람들(ophiophagi)’ 같은 저급한 존재들도 보인다. 사람이나 동물의 이런 ‘괴물성’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장식한다. 유럽처럼 신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곳에서는 원래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성격이나 온전한 인간성을 상실한 모습을 띠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세계를 자신의 사상에 따라 해석하는 것은 꼭 유럽만의 일은 아니다. 조선이나 중국에서 제작한 사해도(四海圖)나 천하도(天下圖) 역시 자국 문명의 중심성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틀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전통적 인식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지켜질 수 없다는 점이다. 아랍 세계에서 발전한 지리 지식이 들어오고, 유럽인들 자신이 여행이나 십자군운동 등의 경험에서 세계를 직접 관찰한 결과가 쌓이면서 이제 기존 세계관이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는 없다. 유럽인들이 세계 각지로 확산해 가기 시작한 중세 말기에 이르면 우선 세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따라서 새로운 내용의 세계지도가 필요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이 만든 세계지도, 천하도

17세기 이후 조선에서 다양한 천하도가 제작되었다. 아마도 중국을 통해 접하게 된 서양의 지리 지식과 지도가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 인식에 충격을 준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천하도는 내대륙-내해-외대륙-외해의 구조로 이루어진 원형 세계를 그린다. 내대륙에는 중국, 조선, 안남(安南), 인도 등 실재하는 나라들이 있고, 내해에는 일본국, 유구국(琉球國) 같은 실재하는 나라들과 일목국(一目國·얼굴 한가운데 눈이 하나만 있다), 삼수국(三首國·사람 머리가 셋이다), 관흉국(貫胸國·사람들 모두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다) 등 중국의 고전인 ‘산해경’에 나오는 가상 국가가 혼재해 있다. 외대륙에는 온갖 가상의 나라들과 함께, 일월이 뜨는 곳의 부상(扶桑), 일월이 지는 곳의 반격송(盤格松) 같은 신목(神木)이 그려져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기존 세계 인식 체계로는 파악할 수 없는 새로운 지리 지식과 정보를 접하게 되자, 전통적 사고와 낯선 지리 개념을 융합한 새로운 ‘세계의 이미지(imago mundi)’를 창안해 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