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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책방골목에 ‘책 모양’ 건물 만들어 인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3. 8. 17:56

부산 ‘아테네 학당’서 헌책방 르네상스 꿈꾼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책 모양’ 건물 만들어 인기

입력 2023.03.08 03:00업데이트 2023.03.08 11:19
 
 
 
 
 
 
건물 천장 찍는 방문객들 -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의 ‘아테네 학당’ 건물 4층 천장에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회화 거장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천장 그림을 촬영하고 있다. 서점 3곳이 있는 이 건물은 헌책방 골목 활성화를 위해 리모델링을 한 뒤 지난 4일 다시 문을 열었다. /김동환 기자

지난 5일 오후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인근 대청로. 길가에 즐비한 건물들 사이로 책 5권이 책장에 꽂혀 있는 듯한 모습의 4층짜리 빌딩이 서 있었다. 외벽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등 책 두 권의 제목이 적혀있었다. 주황색, 나무색, 청록색 등 외벽 색깔도 주변 건물과 달랐다. 이곳을 찾은 정모(23)씨는 “헌책방 골목에 고대 그리스풍의 책 모양 건물이라니 묘한 느낌을 준다”며 “알록달록한 건물 색깔도 이채롭다”고 말했다.

이 빌딩 이름은 ‘아테네 학당(Scuola di Atene)’이다. 이 건물에는 원래 서점 3곳(우리글방, 국제서점, 충남서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21년 11월 지역의 한 건설업체에 팔린 이후 업체가 건물을 허물고 오피스텔을 새로 지어 분양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 등이 나서 “안 그래도 책골목이 쇠락해 가는데 서점 3개가 또 사라지면 책방골목도 무너진다”고 우려했다. 이들의 호소에 지역 건설업체 측이 책방골목 살리기에 힘을 보태기로 하고 지난해 5월쯤 사업 방향을 틀었다. 이 업체 김대권(48) 대표는 “책방골목 쇠락을 걱정하는 지역 여론을 알게 된 뒤 서점 3개를 그대로 두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라며 “책방골목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게 만드는 데 아테네학당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헌책방 골목에 책 5권 서 있는 모양 건물

 

아테네학당은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지난 4일 문을 열었다. 건물 1층엔 서점 3곳, 2~4층엔 베이커리 카페·커뮤니티실 등이 들어섰다. 4층 천장엔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 거장인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그림이 그려져 있다. 건물 안엔 이 그림에 나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와 인류 최초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 등 5명의 흉상과 라파엘로 초상화 등이 놓여 있다. 이민아(44)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장은 “아테네 학당이 붐을 일으켜 쇠락해 가는 보수동 책방골목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테네 학당' 외관 모습 -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아테네 학당' 건물. 책 5권이 책장에 꽂혀 있는 듯한 모습이다. /김동환 기자

보수동 책방골목은 1950년대 초 6·25전쟁 당시 피란민과 미군 부대 등에서 내놓은 헌책들을 사고팔면서 형성됐다. 340m 길이의 골목길 안에 서점과 노점들이 자리를 잡았다. 70~80년대 전성기 때는 서점 80여 개와 노점 등 가게가 100개를 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서점 등장, 독서 문화 쇠퇴 등의 영향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현재는 서점 수가 32개로 줄었다.

서점 규모는 줄었지만 보수동 책방골목은 여전히 부산을 찾는 사람들이 들르는 명소 중 하나다. 지난 5일 서울서 친구들과 함께 여행왔다는 대학생 박제원(22)씨는 “책방골목 헌책방에선 어렸을 때 맡았던 오래된 책 냄새가 나 좋다”며 “절판된 헌책이나 해외 서적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책 구경을 하는 사람이 많았고, 골목길에 있는 가파른 좁은 계단길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35년째 대영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허양군(65) 대표는 “전성기 때는 신학기 월 매출액이 1억~2억원을 넘는 가게들도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10여 년간 힘든 상황이 계속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2월 24일 오후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시민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전국적으로 헌책방 골목이 쇠퇴하는 가운데, 거대한 책 5권이 책장에 꽂혀 있는 건물 외관의 복합문화공간 '아테네학당' 다음 달 4일 문을 열어 보수동 책방골목에 활력을 불어넣을지 기대가 커지고 있다./김동환 기자

◇지자체, 학생들 책방골목 구하기 나서

부산시와 중구는 보수동 책방골목 활성화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시는 책방골목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 올해 가을쯤 이 골목에 ‘미래 유산 표지’를 설치할 예정이다. 책방골목 보존 활동을 펼칠 ‘미래 유산 수호대’도 운영한다. 부산시는 앞서 2019년 보수동 책방골목을 ‘부산 미래 유산’으로 지정했다. 배강수 부산시 유산활용등재팀장은 “싱크탱크인 부산발전연구원에 책방골목 활성화 방안 용역을 진행 중”이라며 “조만간 그 결과가 나오면 활성화 프로젝트를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부산시는 또 책방골목에서 200~300m 떨어진 곳에 지난 1일 개관한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도 활용할 방침이다. 지상 3층에 연면적 2196㎡ 규모의 이 건물에는 도서관, 기록관, 전시관 등이 들어섰다. 김기용(59) 부산근현대역사관 관장은 “보수동 책방골목과 연계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해 책방골목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했다.

 

부산 중구는 지난 2010년 지어진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을 올해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지상 8층짜리 이 문화관은 책방골목에서 책을 구입하거나 읽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의 쉼터다. 책박물관, 도서관, 휴식 공간 등이 들어서 있다. 중구 관계자는 “아테네 학당 개관에 발맞춰 책방골목의 이미지를 산뜻하게 재단장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지자체뿐 아니라 학생들도 책방골목 살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혜광고·동주여고·남성여고 등 책방골목 인근 고교 학생들은 지난해 책방골목 관련 노래와 뮤직비디오, 단편영화, 시집 등을 만들었다. 학교 독서 프로그램 동아리 소속인 이 학생들은 책방골목 서점에서 헌책을 사거나 독서를 하는 활동도 벌였다. 혜광고 학생들은 올해도 책방골목에서 독서 체험 활동을 하고, 시집도 만들 예정이다. 김성일(37) 혜광고 국어 교사는 “책방골목을 살리려면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개성과 감성을 담은 다양한 책 문화 콘텐츠를 창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