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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원의 말글 탐험

입소문과 소문의 차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2. 8. 17:29

[양해원의 말글 탐험]

입소문과 소문의 차이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10.13 03:03
 
 
 
 
 

머리 박박 깎인 꼬맹이들이 검정 교복에 싸여 학교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책가방엔 교과서·공책, 양은 도시락에, 펜이나 만년필, 잉크병 따위를 담았다. 작으나마 옥편(玉篇), 영어 사전(辭典)도 빼놓지 않았다. 중학교 가서야 처음 배우는 abc며 'I am a boy'가 신기하기도 해서 재미 삼아 사전을 들추곤 했다. 다른 녀석들은 얼마나 손때 묻혔는지 넌지시 살피기도 하고.

 

국어사전은 달랐다. 우리말이 그나마 익숙해서였을까, 아니면 대수롭잖게 여겨서였을까. 잘 있지도, 가지고 다니지도 않았다. 하물며 이젠 인터넷 검색창에 타닥 치면 다 뜨는 세상이거니. 게다가 '개방형 웹 사전'이라는 '우리말샘'이 새로운 흐름을 일으킬 모양이다. 사전도 시대를 반영하니 차츰 바뀌어야 마땅하다. 다만 정도(程度)가 문제인데. 국립국어원 인터넷 사전에 새로 오른 말에 멍멍해진 적이 있다.

 

'한국 양말이 싸고 질(質)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양말 전문점을 찾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잡지(기자)는 바닥이 좁다 보니 맡은 분야에서 얼마나 두각을 나타냈는지 입소문이 중요하다.'

신문에서도 심심찮게 눈에 띄기에 설마 했는데 이'입소문(所聞)'이 버젓이 올림말이 된 것이다. 1999년 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던 말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이 소문이다. 입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소문'이라 풀이했다. 말 자체가 겹말이요, 풀이는 동어반복이다. 그럼 소문이 달리 번지기라도 한다던가.

 

'맞대결'은 또 어떤가. '서로 맞서서 대결함.' 이 '대결' 풀이 또한 야릇하다. '양자가 맞서서 우열이나 승패를 가림. 겨루기·맞서기로 순화.' 순화어까지 내놓고 정작 겹말인 맞대결은 왜 그냥 뒀는지.

 

물론 일찍이 표준어로 인정받은 겹말도 널렸다. 고목나무, 낙숫물, 단발머리, 생일날, 역전앞, 해안가…. 오랫동안 입에 오르내리며 글로도 쓰임새가 굳은 탓이다. 한데 아직 운명을 알 수 없는 겹말에 애써 숨을 불어넣을 것까지야. 예외가 많아지면 틀이 망가질 수 있다. 살릴 건 살리되 솎을 건 솎아야 더 살진 밭이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책장 꾸미개 대접도 못 받는 애꿎은 사전을 어쩐다. 매일 밤 사그락사그락 뒤적이기라도 해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