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편지]
치앙마이 2천5백미터 고지에서 만난 만병초와 벚꽃, 태국수련
도이인타논 국립공원(Doi Inthanon National Park)은 해발 2,565m의 도이인타논 산을 중심으로 한 구역입니다.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해서 ‘태국의 지붕’이라고 불린다고도 합니다. 히말라야 산맥의 끝자락이라는 것도, 영화 ‘아바타’의 모티브가 된 산이라고도 알려져 있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국립공원이니만큼 가볍게 2시간 남짓 그리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는 짧은 트레킹 코스를 개발해 관광용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관광객을 위해 트레킹 중에 살펴볼 관람 포인트를 여러 곳 설명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반가운 식물 군락지가 있었습니다.
만병초 군락지였습니다. ‘로도덴드론 Rhododendron 군락지’라고 사진과 함께 표시한 이 곳의 식물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만병초 Rhododendron brachycarpum D.Don ex G.Don’ 종류였습니다. 도이인타논의 만병초 군락지는 트레킹을 마무리하는 구역이었지만, 이 산의 정상 부분에서부터 한두 그루씩 산재한 만병초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만병초 꽃이 활짝 피어난 정상에는 이 날 아침 기온이 ‘영상 6도’로 적은 표지판이 눈에 보였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매우 추운 날씨라는 뜻에서 표시한 것이겠지요. 뜻밖의 자리에서 만나게 된 만병초는 마치 타향 땅에서 만난 고향 친구처럼 반가웠습니다.
만병초가 울창하게 군락을 이룬 군락지 지역에서는 새빨간 꽃이 한창 만발해 있었습니다. 짙은 초록의 나뭇잎을 거느리고 선명한 붉은 빛으로 피어난 만병초 꽃송이는 이곳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아무리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습니다. 비교적 높은 산 위에서 자라는 만병초이지요. 우리 민간에서 고혈압, 저혈압, 당뇨병, 신경통, 양기부족 등 ‘만병을 치료하는 나무’라는 뜻에서 ‘만병초’라는 이름을 가졌고, 그 바람에 민간에서 남벌이 횡행하여 한때 멸종위기에 몰리기까지 했던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상태에서 보기 쉽지 않은 나무입니다만, 도이인타논 산의 군락지에서는 넓게 펼친 군락지를 찾아볼 수 있어 더 반가웠습니다.
비교적 자연이 잘 보존된 이 곳 치앙마이 사람들은 주변 환경의 영향 때문인지, 꽃을 참 좋아하는 듯했습니다. 그 가운데에도 난 종류의 식물을 무척 좋아하는 듯합니다. 가는 곳마다 참으로 다양한 난 꽃을 심어 키우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큰 나무 줄기에 기생해 살아가는 착생난을 많이 키운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도이인타논 국립공원의 트레킹 코스를 가벼이 걷고난 뒤에 등산로 초입 근처에서는 어느 방향에서라도 큰 나무 줄기 위에서 하얗게 피어난 착생난 종류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산마을의 특징입니다.
도이인타논 산 정상이 영상 6도라고 했는데, 이는 치앙마이 지역에서 가장 낮은 온도입니다. 자료를 살펴보니, 일년 중 이 산봉우리의 가장 낮은 기온은 영상 5도에 불과하답니다. 같은 시기에 산 아래 마을은 평균 최저기온이 19도, 최고기온은 31도라고 합니다. 우리의 따뜻한 봄날 날씨인 거죠. 산 아래에서 환하게 피어난 벚꽃 거리를 걸을 수 있는 건 자연스런 일이지요. 벚꽃길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곳곳에 피어난 붉은 겹벚꽃은 꽤 화창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특히 붉은 빛의 겹벚꽃을 아예 일본식으로 ‘사꾸라’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그 사꾸라가 지나는 거리마다 환하게 피어있었습니다.
사실 만병초보다 반가웠던 건 지난 《나무편지》에서 사진으로 보여드렸던 수련이었습니다. 마음 먹고 떠난 길이었다면 태국 수련 자생지를 찾았겠지만, 그게 아닌 길이어서, 그저 발길 닿는대로 가게 된 곳이 치앙마이의 ‘매림(Mae Raem)’ 구역이었습니다. 그저 평안한 풍경을 찾아 가던 그 길에 ‘시리킷식물원(Queen Sirikit Botanic Garden)’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하자면 ‘시리킷 여왕 식물원’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줄여서 시리킷식물원이라고 했습니다. 왕정국가인 이 나라는 왕가와 관련한 기념물, 기념 장소가 적지 않습니다. 멀쩡한 이름이 있다가도 왕이 한번 찾아오면 곧바로 왕의 이름으로 바꾸는 식입니다.
시리킷 여왕 식물원도 그런 곳입니다. 시리킷(Sirikit Kitiyakara 1932 - 2016)은 태국의 왕비였고 지금 국왕 마하 와치랄롱꼰(Maha Vajiralongkorn 1952 - )의 어머니입니다. 1950년에 전 국왕인 푸미폰 아둘야데즈(Bhumibol Adulyadej 1927 - 2016)와 혼례를 치르고 무려 70년 동안 국왕으로 재임한 푸미폰 국왕의 왕비로서 지위를 누린 것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명명된 시리킷 식물원은 1993년에 처음 ‘매사 식물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가 시리킷이 다녀가자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이후 이 식물원은 태국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몇 개의 식물원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시리킷 식물원은 태국 전지역에서 ‘국제 기준에 따라 지은 최초의 식물원(Thailand’s first botanical garden built according to international standards)‘이라고 나오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국제기준’이라는 게 뭘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전체적으로 1,000헥타아르, 대략 3백만 평 규모의 부지에 건립된 엄청난 규모의 식물원입니다. ‘캐노피워크’라는 이름으로 된 공중보도가 있어서 열대식물의 상층부를 관찰할 수 있는 구간을 포함해 식물원을 골고루 관람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짧은 시간에 관람을 마치려면 여덟 개의 유리온실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겁니다.
유리온실의 식물 관찰만으로도 거의 한나절이 지난 듯합니다. 온실이라고 했지만, 가온(加溫)이 지나치지 않아 여느 온실에서처럼 관람의 불편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온실은 열대우림에서 자라는 바나나, 야자나무와 이 지역 토종 식물들에서 시작해, 선인장과의 식물, 소철,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던 갖가지 난초 종류와 양치식물 종류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식물들이 있었습니다만, 해설판에 따르면 주로 태국 토종 식물 위주로 전시했다고 합니다. 이 유리온실 가운데에 하나가 수생식물 온실이었는데, 그곳에 수련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열대수련’ 종류라 하며 ‘호주 수련’과 함께 이야기한 ‘태국 수련’입니다.
태국에서 만나는 태국수련, 일일이 종류를 동정하고 이름을 새기는 일은 내려놓고,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자생 군락지도 아니고, 고작해야 온실 안의 수조 안에 들어있는 수련이지만, 그래도 태국의 식물원 온실 안에서 만난 ‘태국수련’이라니 좋을 수밖에요. 한 나절을 보낸 시리킷식물원의 유리온실에는 수련 외에도 재미있는 식물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매우 많은 종류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식충식물 온실도 그랬습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차이를 보이며 곤충을 유인하는 식물들의 생존 전략을 살피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이지요.
북위 18도의 남쪽 나라의 식생은 우리 지역과 다릅니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도 조금 남쪽인 북위 33도의 제주도에만 가도 식생이 다른 걸요.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큰 나무들이었습니다. 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의 특징을 간직한 나무들은 대개 우리 곁에서 보는 나무들에 비해 높이가 훨씬 치솟아 있었습니다. 게다가 치앙마이 지역은 높은 건축물이 아직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어서 도시 전체가 무척 싱그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큰 나무들 가운데에 줄기와 가지에서 땅으로 뻗어내리는 기근(氣根)이 발달한 나무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아침 바람이 차갑긴 해도 매섭던 엊그제의 찬 바람만큼은 아닌 듯합니다. 낮에는 영상으로 기온이 오른다고도 합니다. 따뜻하게 보낸 치앙마이에서의 한 주일 동안 만난 만병초, 수련, 벚꽃의 기억이 다시 매운 바람이 몰아올 추위를 잠시나마 덜어낼 수 있게 하는 따뜻한 기억 되지 않을까 싶네요. 사진으로나마 함께 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3년 1월 30일 아침에 …… 솔숲에서 고규홍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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