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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먼 곳에서 찾아와 피어난 꽃들 … 낯설어서 더 어여쁜 꽃들의 노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2. 14. 12:51

[나무편지]

먼 곳에서 찾아와 피어난 꽃들 … 낯설어서 더 어여쁜 꽃들의 노래

  찬 바람 피해 따뜻한 유리온실을 찾았습니다. 잠깐 짬을 내 다녀올 수 있는 작업실 근처의 작은 식물원, ‘부천 호수공원 수피아식물원’에 다녀왔습니다. 아카시아 꽃을 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세종시의 ‘국립 세종수목원’에서 노랗게 피어난 아카시아 꽃을 보았던 게 지난 해 이맘 때였거든요. 지나치듯 들를 수 있는 곳이어서 아무 부담이 없는 걸음이었지만, 목적이 있었던 탓으로 조금은 설��습니다. 과연 아카시아 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죠. 세종수목원에서는 지난 해 이맘 때 피었던 게 사실이지만, 유리온실 안의 나무여서 개화 시기를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안 피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함께였습니다.

  아카시아나무는 싱그럽게 잘 서 있었지만, 꽃은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아카시아나무는 우리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여름에 하얀 꽃 피는 아까시나무가 아니라, 열대 사바나 지역에서 자라는 아카시아나무를 말하는 겁니다. 수피아식물원에는 아카시아나무가 여러 그루는 아니지만, 몇 그루 있지요. 혹시 꽃을 피웠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유리온실 안에 들어섰지만 아카시아나무는 안 피었습니다. 애초의 기대를 접고 천천히 다른 나무들을 하나 둘 살펴보며 짧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유리온실 안의 식물들은 대개 열대식물들이어서 우리의 들과 숲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이 아닙니다. 생소해서 더 반가운 식물들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샅샅이 한 바퀴를 돌아봐야 한 시간이면 넉넉하지 싶은 작은 공간이지만, 꽃 한 송이, 나뭇잎 한 잎 하나하나 꼼꼼이 살펴보려면 여느 곳에서처럼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흔히 보는 꽃과 나무들이 아니어서 표찰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식물들입니다. 때로는 여러 종류의 식물이 섞여 있어서 표찰의 위치가 헷갈려 식물 이름을 잘못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까닭에 꽃 한 송이를 바라보는 데에도 다른 곳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릅니다. 그건 수피아식물원뿐 아니라, 대개의 식물원 온실 구역에서 흔히 겪게 되는 일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그저 예쁘게 눈에 들어온 꽃들을 차례대로 보여드립니다. 이 어여쁜 꽃송이들이 긴 세월 대를 이어가며 제 몸에 담은 내력과 사연을 제대로 알지 못할뿐더러 심지어는 이름조차 처음 보는 게 더 많습니다. 특히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꽃들은 위에 담은 부겐빌레아를 뺀 나머지 꽃들은 모두가 처음 보는 꽃들입니다. 그저 이건 우리가 흔히 보던 어떤 꽃과 닮았다고 생각하며,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게 전부인 꽃들입니다. 어떠신가요? 우리의 어떤 꽃과 참 많이 닮았다 싶은 꽃이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꽃잎 없이 무수한 꽃술들로만 피어난 꽃을 보면 당연히 우리의 자귀나무 꽃이 떠오르실 겁니다. 아직 채 피어나지 않은 이 나무의 꽃봉오리는 《나무편지》에 담지 않았지만, 그것도 자귀나무와 꼭 닮았습니다. 수피아식물원에는 사진에서 보시는 두 종류가 있는데, 이는 모두 칼리안드라 Calliandra 속에 속하는 나무입니다. 붉은 꽃은 수피아식물원의 표찰에 Calliandra emarginata 라고 돼 있습니다. 같은 모양으로 하얗게 피어난 꽃은 Calliandra haematocephala 입니다. 자귀나무를 닮은 이 두 나무는 모두 콩과에 속하는 식물입니다.

  우리의 자귀나무 Albizia julibrissin Durazz. 도 콩과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본 대로 자귀나무와는 친척관계의 식물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굳이 자세히 말하자면 수피아식물원의 두 식물은 콩과의 칼리안드라속 식물이고, 자귀나무는 콩과의 알비지아속 식물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더 따지고 들어가면 콩과에 속하는 식물이 매우 많습니다. 꽃의 생김새가 비슷하니 분명이 친연 관계가 가깝지 싶긴 하지만, 그 내력을 정확히 모르고는 그저 가까운 관계라고 이야기하기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밖의 다른 꽃들 가운데에도 우리 땅에서 보았던 어떤 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겠지요. 보는 분들마다 살아온 경험과 기억이 서로 다르기에 어느 꽃이 어느 꽃을 닮았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들이 살아가는 데에는 어디에서라도 닮은 점은 참 많은 법이고, 그러다보니 생김새도 닮을 수밖에요. 수피아식물원의 작은 유리온실 안에서도 그렇게 우리의 어느 나무와 닮은 나무, 닮은 꽃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 꽃과 나무는 아니지만 모두가 서로 비슷하게 살아가는 생명이라니 정겹습니다.

  그렇게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들을 가만가만 바라보며 눈으로 이야기 나눕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멀리 떠나와 유리온실에 갇힌 나무들의 속내까지는 알 수 없지만, 곁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의 사랑스러운 눈길을 받는 것만으로도 그리 나쁜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니지 싶습니다. 규모가 큰 식물원이 아닌데다 아카시아 꽃이 피었나를 살피려 찾은 것이어서, 금세 돌아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걸음이었습니다. 꽃 피우지 않은 아카시아나무를 한참 바라보고, 자리를 옮겼지만, 곳곳에서 피어나 발길을 붙잡는 다른 꽃송이들 때문에 꽤 긴 시간을 즐거이 보냈습니다.

  바나나 파파야 나무고사리처럼 먼 곳에서 들어온 식물들이 대부분입니다만, 수피아식물원에는 우리 땅의 남녘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비파나무, 초령목 종류 등이 그런 나무들입니다. 부천 지역에서는 노지에서 자랄 수 없는 식물들입니다. 낯선 식물들 사이에서 우리 식물들을 찾아보는 것도 반가운 일입니다. 말없이 낯선 친구들과 어울리며 잎 돋우고 꽃 피우는 우리 생명들의 재잘거림도 더불어 더 싱그럽습니다.

  설도 대보름도, 그리고 입춘도 지났습니다. 이제 차츰 2023이라는 숫자도 익숙해져 가는 이월 중순입니다. 한 주일 두 주일 더 지나면 학교의 문이 활짝 열리는 개강 시즌입니다. 매서운 겨울 추위는 이제 한풀 꺾인 듯합니다. 그야말로 이제는 머뭇거리지 말고 본격적으로 봄마중 채비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3년 2월 13일 아침에 …… 솔숲에서 고규홍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