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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최후 순간 적은 ‘류성룡 비망록 달력’ 일본서 환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1. 24. 13:04

이순신 최후 순간 적은 ‘류성룡 비망록 달력’ 일본서 환수

노형석별 스토리  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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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22.11.24
‘싸우는 날에 화살과 돌팔매를 무릅쓰며 나서자,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말하길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나서면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듣지 않고) 전투를 직접 독려하다 결국 날아온 총알을 맞고 죽었다. 아!’

 

류성룡 비망록 달력의 임시표지 부분. 충무공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상황에 대한 내용을 친필로 적어놓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제공: 한겨레

 

조선시대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는 상황을 묘사하듯 적은 당대 지인의 친필 기록이 처음 세상에 나왔다. 기록자로 추정되는 이는 충무공의 절친한 친구이자 명재상이었던 서애 류성룡(1542~1607)이다. 개전 이후 우의정과 영의정을 맡아 전시 정부를 이끌며 항전을 주도했고, 17세기 조선, 중국, 일본에서 모두 베스트셀러가 된 임진왜란 회고록

을 쓴 인물이기도 하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류성룡이 친필로 썼다고 추정되는 16세기 비망록 달력을 최근 일본에서 발견해 국내로 들여왔다고 24일 발표했다.

류성룡 비망록 달력의 본문 첫 장. 책 제목이 쓰여 있어 ‘권수제면’이라고 부른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제공: 한겨레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환수한 달력의 정식 이름은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

)다. 책자 얼개인데, 세로(38㎝)가 가로(20㎝)보다 긴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대통력은 천체를 측정해 해와 달의 운행과 절기를 가늠하는 책력의 일종이다. 원래 명나라에서 만들어져 조선시대 농사와 일상생활 지침으로 널리 쓰였으며 여백에 일정이나 감상을 적는 비망록 구실도 겸했다. 환수한 유물은 경자년(1600년)의 대통력을 담은 판본. 1599년 간행해 금속활자본으로 찍었다. 1600년 경자년 대통력 역법을 쓴 달력은 지금껏 국내에 다른 판본이 전해지지 않아 문화재적 가치를 더욱 높이 칠 수 있다고 한다.

달력에서 경자년의 24절기 일시를 표기한 부분(오른쪽 면)과 각 방위의 길흉을 점치는 참고 그림인 연신방위지도 부분(왼쪽 면).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제공: 한겨레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쪽은 “김문경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의 제보로 현지 소장된 달력의 존재가 알려졌고,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수차례 조사해 기본 내역을 파악하고 환수 전략을 세워 교섭한 끝에 지난 9월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조선시대 책력을 보면 소장자가 빈 여백에 일정이나 감상을 적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환수된 류성룡 소장품 추정 달력도 여백에 먹글씨와 붉은 안료 붓질로 그날의 날씨, 일정, 약속, 병세와 처방 등을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쪽은 “기재된 필적과 주로 언급되는 인물, 사건 등의 정보를 바탕으로 류성룡의 문집

중 연대기가 기록된 ‘서애선생연보’(西厓先生年譜)와 대조해보니 가까이 놓고 자주 써서 손때가 묻은 그의 유일한 수택본(手澤本)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류성룡의 비망록 달력의 6월조 일부(왼쪽)와 7월조 일부. 6월조에는 일본에 끌려갔던 강항의 귀국과 관련된 내용이, 7월조에는 의인왕후의 승하 소식을 듣고 옥연정사에서 슬픔에 빠진 일을 적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제공: 한겨레
여백에 적은 비망록 내용들은 임진왜란 시기 최고 정부 관료이자 군사전략가로서 활약한 류성룡의 구체적인 일상을 보여준다. ‘서애선생연보’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을 담았고 친구 이순신과의 교유 상황, 당시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던 선비 강항(1567~1618)의 귀국 등 경자년의 역사적 사실들도 두루 파악할 수 있다. 원표지가 사라져 임시로 매어둔 가철(假綴) 표지엔 충무공이 부하들 만류에도 노량해전 현장에서 독려하다 총알 맞고 전사한 상황을 묘사한 친필 기록이 남았다. 전사 정황 외에 류성룡이 탄핵을 받고 파직됐다는 소식을 들은 충무공이 배 안에 있을 때 맑은 물 떠놓고 스스로를 경계했다는 일화도 따로 적혀 있다.
류성룡의 비망록 달력의 6월조 일부(왼쪽)와 7월조 일부. 6월조에는 일본에 끌려갔던 강항의 귀국과 관련된 내용이, 7월조에는 의인왕후의 승하 소식을 듣고 옥연정사에서 슬픔에 빠진 일을 적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제공: 한겨레
문화재청은 “친필로 묘사된 희귀한 당대 이순신의 행적 기록이어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종손가 소장 보물

에 빠져 있던 새 자료를 발굴, 환수했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산하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관리하면서 류성룡 관련 사료로 전시 등에 폭넓게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4일 오전 10시30분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환수한 달력을 언론에 공개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