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 14
― 어느 날의 하프
바람으로 살았다
어디에든 닿았고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으나
기쁨과 슬픔의 빨랫줄에 걸린
부끄러운 속옷이 된
나를 붙잡아 줄로 맨 사람이여
그대가 짚어내는 내 몸에서
물소리가 흘러나오고
물소리가 감춘 음표들이
꽃 열리는 순간을
낙엽이 떨어질 때 움켜쥔
하늘 한 자락이 깔리는 어스름을
사랑으로 받겠느냐
야윈 그림자를 바지랑대 삼아
눈 먼 악보의 노래를 뜯어내는
그대의 손길에 속절없이
나는 숲속의 여린 꽃잎 하나 훔치지 못하는
가난한 사냥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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