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안녕, 베이비박스 2019

목발 14― 어느 날의 하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6. 25. 13:20


목발 14
― 어느 날의 하프

 

바람으로 살았다
어디에든 닿았고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으나
기쁨과 슬픔의 빨랫줄에 걸린
부끄러운 속옷이 된
나를 붙잡아 줄로 맨 사람이여
그대가 짚어내는 내 몸에서
물소리가 흘러나오고
물소리가 감춘 음표들이
꽃 열리는 순간을
낙엽이 떨어질 때 움켜쥔
하늘 한 자락이 깔리는 어스름을
사랑으로 받겠느냐
야윈 그림자를 바지랑대 삼아
눈 먼 악보의 노래를 뜯어내는
그대의 손길에 속절없이
나는 숲속의 여린 꽃잎 하나 훔치지 못하는
가난한 사냥꾼일 뿐이다

'안녕, 베이비박스 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발 16― 대학大學강의  (0) 2022.07.04
목발 15― 뼈의 말  (0) 2022.07.01
목발 13― 상강霜降 지나며  (0) 2022.06.23
목발 12― 내가 새가 된 이유  (0) 2022.06.17
목발 11― 나들이  (0) 202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