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0] 능금나무 꽃과 놀란 새들의 사연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4.09 03:00
신한평 ‘화조도’(1788), 종이에 채색, 124.0x54.2cm 리움미술관 소장
새잎과 꽃이 피기 시작한 능금나무 한 그루와 여러 표정의 새들이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연초록의 어린잎과 짙은 녹색 잎이 섞여 있으며 잎 모양은 긴 타원형에 끝이 뾰족하다. 확대해 보면 굵은 Y자 잎맥이 2~3쌍씩 가운데의 주맥(主脈)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룬다. 잎 가장자리는 둔하고 얕게 팬 톱니도 확인된다. 활짝 핀 꽃은 하얀 다섯 장의 꽃잎을 펼치고 있다. 가운데는 여러 개의 가느다란 노란 꽃술을 정성스럽게 그려 넣었다. 마치 오늘날의 세밀화를 보는 듯 능금나무 잎과 꽃의 특징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다만 꽃잎 아래의 적자색 꽃받침은 매화 꽃받침 모습이다. 실제 능금꽃의 꽃받침은 연한 녹색이지만 매화에 익숙한 화가가 매화 꽃받침을 그려 넣은 것으로 보인다. 나무 줄기는 표면이 매끄럽고 부분적으로 가로로 짧은 선을 그어 가로 숨구멍을 나타내고 있다. 능금이 한창 열리는 십여 년 남짓한 젊은 나무임을 화가는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줄기의 윗부분이 분질러져 있는 것은 전문적인 능금 과수원의 나무가 아니라 정원에 관상용으로 한두 그루 심어 가꾸는 나무임을 짐작하게 한다. 절단된 부분을 그대로 두면 빗물이 고여 썩어 들어가므로 과수원이라면 관리원이 금방 조치를 했을 것이다. 조선 말기까지 서울의 자하문 밖에 많은 능금나무 과수원이 있었다. 나무 숫자로는 자그마치 20만 그루나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 개량종 사과를 널리 재배하면서 능금이란 옛 이름은 차츰 없어지고 지금처럼 사과로 통일되어 버렸다.
그림 속의 새는 짝을 이룬 3쌍과 짝이 없는 한 마리를 포함하여 모두 7마리이다. 맨 위 가지에 홀로 앉은 작은 새는 혓바닥이 보일 만큼 입을 크게 벌리고 울부짖고 있다. 나머지 새들도 모두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오른쪽 방향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리거나 날아가고 있다. 아마 이 능금나무 옆 숲속 어디에 자리 잡은 둥지 근처에 고양이나 구렁이가 나타나자 특별 경계 태세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새끼를 둔 것 같은 한 쌍은 급히 둥지로 향하고 있다.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1726~?)의 대표적 화조도이다. 그림 제목에는 ’1788년 유월(流月)경 그렸다'고 했다. 그의 나이 62세 때이다. 그러나 유월은 양력 7월경이며 실제 능금꽃은 양력 4월 하순경에 핀다. 화가는 봄에 본 풍광을 기억해 두었다가 여름날 시원한 별채에 앉아 그림을 완성한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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