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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우리 그림속 나무 이야기

[12] 배꽃 아래의 강아지 세 마리, ‘아! 졸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8. 25. 13:22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2] 배꽃 아래의 강아지 세 마리, ‘아! 졸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4.30 03:00

 

 

 

 

 

이암 ‘화조구자도’(16세기 중반), 종이에 채색, 86.0x44.9cm, 리움미술관 소장.

 

표정이 서로 다른 귀여운 강아지 세 마리가 작은 바위 앞을 무료하게 지키고 있다. 거의 C자형으로 휜 돌배나무에는 새 두 마리가 앉아 꽃을 향하여 날아드는 나비와 벌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하지만 잡아먹을 마음은 전혀 없어 보인다. 나무줄기의 표면 여기저기에 새까만 혹이 수없이 붙어 있다. 새나 곤충에 의한 상처 흔적이거나, 바이러스 혹은 곰팡이 등에 의하여 생긴 것이다. 시달림을 이겨내고 자라는 나무임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나지막한 언덕에 비스듬히 자라는 돌배나무 고목 밑은 구태여 파보지 않아도, 땅속에는 크고 작은 돌이 많아 물 빠짐이 잘 되는 좋은 땅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금 규모가 큰 양반가의 뒤뜰이다. 이런 곳에 돌배나무 한두 그루는 꼭 있어야 제격이다. 꽃과 열매 모두 선비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돌배나무는 우선 꽃의 아름다움으로 후원의 운치를 더해준다. 열매는 제사 상차림의 필수품이다. 나무 속살도 곱고 치밀하여 가구는 물론 선비의 문집 등 목판 글자를 새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얀 배꽃이 새로 돋아난 잎의 호위를 받으면서 가지마다 잔뜩 피어 있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둘레를 좀 진하게 그렸는데, 실제로 돌배나무 잎 가장자리가 짧은 침으로 촘촘하게 둘러쳐 있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었다. 붓으로 그린 옛 그림은 정밀한 표현에 한계가 있을 것임에도 돌배나무 잎사귀는 오늘날의 세밀화 수준이다. 돌배나무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오는 목련이나 벚나무와 달리 잎과 꽃이 거의 동시에 핀다. 다섯 장의 꽃잎을 확인할 수 있고 꽃봉오리도 실물 그대로의 모습이다. 다만 돌배 꽃은 실제로 꽃받침이 연초록인 데 비하여 그림에서는 적갈색이 뚜렷하다. 신한평의 화조도 등에서처럼 매화의 꽃받침 색깔을 차용한 것이다. 잎과 꽃에서 우산살 모양의 꽃대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어느 화창한 봄날 강아지 세 마리는 뒤뜰의 돌배나무 아래로 산책을 나와 잠시 쉼터로 삼았다.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나른한 오후를 한가롭게 즐기고 있다. 강아지 한 마리는 결국 졸음을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보는 우리도 편안함으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보물 제1392호인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는 세종의 직손인 이암(1499∼?)이 그렸다. 조선 전기의 작품성이 뛰어난 화조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