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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네 집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7. 19. 11:39

토마스네 집

 

나호열

 

누군가 ‘토마스!’라고 불렀다. 돌아보니 몇 년 전 나와 함께 예비교리를 받던 교우였다. ‘그래, 토마스였지. 내가!’ 역병으로 인한 봉쇄로 교회가 멀어지다 보니 까마득해진 이름이었는데 교우의 호명에 울컥 초심의 그 때가 되살아났다.

평생 무신론자인 내가 어찌 천주교도가 되었는가? 이순이 넘어가면서 불신과 증오가 창궐하는 시대에 대한 환멸, 늙어감의 한숨과 안식에 대한 열망이였다고 해두자.

 

아무튼 사월에 시작한 교리 학습은 장장 팔 개월이 지난 12월이 되어서야 끝났다. 오십이 갓 넘은 주임신부는 열정으로 가득 찬 분 이었다. 멋진(?) 사회생활을 하던 중에 삼십이 되어 신학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뒤늦게 사제가 되었지만 현대인에게 왜 종교가 필요하며 신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간절했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입교를 위한 학습은 신앙에 대한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일이었다. 일 주일에 한 번 꼬박 두 시간 성경 공부를 하고, 피정(避靜) 과 성지순례, 그리고 성경 필사까지의 강행군이 이어졌다. 마지막 관문인 성경 필사 노트 몇 권을 꼼꼼이 검사하던 신부님!

성탄 전야에 평생 처음으로 개근상을 받고 하느님의 종이 되기로 한 날 나는 토마스가 되었다.

 

토마스는 예수의 열 두 사도(司徒)중의 한 명이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가 부활하였을 때 직접 예수를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 하여 ‘의심 많은 토마스’로 불리기도 하지만 확실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 그 믿음 이후의 결단의 의지를 버리지 않기 위한 그의 의심은 맹신(盲信)이나 광신(狂信)과는 거리가 멀다. 외경(外經)에 의하면 토마스는 예수의 명에 따라 먼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였다고 한다.

굳건하다고 믿는 개인적 신념이 자칫 선악(善惡) 의 그릇된 잣대로 말미암아 맹신과 광신의 도가니 속으로 떨어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많은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감추고 침묵할 때, 홀연히 그 의심의 전모를 드러내고 의심을 고백하는 일이 얼마나 고독한 일인가를 그의 행전(行傳)을 통해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공동체 의식과 연대(連帶)는 어느 때보다 중요한 사용가치이며 덕목이다. 그 공동체 의식과 연대는 이익의 추구를 위한 단순한 결합이 될 때 공동선 (共同善)의 의미를 상실한다. 의심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도들 틈에서, 아무도 위험을 무릅쓰기를 원하지 않는 침묵 속에서 토마스는 고독한 외침을 들려주었던 것이 아닌가!

 

종교(宗敎) 즉, religion은 ‘신과 인간을 다시 묶는다.’는 뜻이다. 절대적 존재나 가치에 대한 인간의 믿음은 언제나 시험에 들게 마련이다. 저 유태인 수용소에서 젊은이 대신 자신의 목숨을 버린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는 “제가 대신 죽겠다.”하고 아우슈비츠 아사(餓死)감옥에 스스로 갇혀 죽었다. 그의 나이 47세 였다. 내 마음 안에 수많은 가여운 타인의 삶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낄 때, 그리고 그런 타인의 삶이 나의 따뜻한 손길을 바라고 있음을 느낄 때 나는 고독을 느끼고,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 나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길이다’라는 외침에 전율을 느낀다. 나의 시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지 못한, 부끄러운 고백의 일단이다.

 

배부른 개가 되기를 거부한

늑대가 그립다

숲에서 버림받고

외톨이인지 떠돌이인지

눈 안에 가득 푸른 눈물을 담은 늑대가

가끔

아주 가끔

내 영혼의 유배지에서 울고 가는 것을

그저 완성되지 않은 문장으로

부끄러운 상처를 더듬을지라도

기꺼이 굶주림마저 나눠가지려던

마음이 그리워지면

어느새 사막이 내게로 왔다

버림받은 늑대가 왔다

 

-「토마스네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