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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유내강 外柔內剛의 순박한 나무꾼 시인- 오만환 시인에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8. 12. 27. 15:56

외유내강 外柔內剛의 순박한 나무꾼 시인

- 오만환 시인에게

나호열 (시인)

 

45 년 전 이군요. 처음 오 시인과 처음 만났던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약관에서 훌쩍 이순을 지났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생생하게 그 날의 장면이 선명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불량학생이었던 나는 강의실보다 문학 클럽 - 지금이야 동아리방이라고 합디다만- 방에서 소일하는 날이 많았었는데 그 날도 어두운 방에서 어줍잖은 공상에 빠져 있을 때 오 시인과 첫 대면이 이루어졌지요. '공대생이 문학을 해 보겠다고?' 내가 던진 첫 질문이 그랬었지요. 장난삼아 던진 질문에 진지한 표정으로 시를 써 보겠다고, 열심히 해 보겠다고 대답하던 맑은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왠지 시인이 되면 멋있을 것 같아서, 문학에 대한 소양이 있는 지도 모르는 채 겉멋만 잔뜩 든 나와는 확연하게 다른, 왠지 결의에 차 보였던 그 표정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따지고 보면 오 시인과 나는 성격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어 보였을 뿐만 아니라 한 방향만 고집하는 나와는 달리 문학 클럽 이외에도 대학방송국에도 적을 두고 있는 오 시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것도 사실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도 70년대 초반의 시국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학생운동에 뛰어든 모습에서 내게 없는 젊음의 패기를 부러움으로 바라보기도 했었습니다. 불의에 눈 감지 않는 강인함과 그 누구에게도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선배들에게는 늘 깍듯하게 대하는 부드러운 심성이 자연스럽게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유연함이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오 시인의 덕목이지요. 그런 온유함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 시인과의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년 2월 김건일 문학상 시상식장 : 문학의 집 서울



어려운 캠퍼스 환경 속에서 몇 권의 동인지를 만들면서 시인의 꿈을 키우고, 취업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우리가 몇 년 터울로 시단에 나오고 난 후에 사회성이 부족한 나는 문단에는 발을 끊게 되었지만. 나와는 달리 오 시인은 많은 문인들과의 교유를 펼치면서 각기 다른 길을 가는 듯 했었지요.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한국예총 출신작가, 한국문인산악회, 농민문학회, 소정 한중문화예술협회 등 많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좀 더 창작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오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칠장사 입구』(1990)발간에 나름의 힘을 보태고 두 번 째 시집 『서울로 간 나무꾼』(1997)에는 서평을 맡아 썼을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십 여 년 동안 웹진 인터넷신문의 운영진으로 함께 고락을 나누면서 선후배라기보다는 삶의 신고를 나누는 형제애로 공고해졌던 인연은 변함이 없었으니 그 모든 일들이 내게는 행운이며 축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집안의 대소사에도 서로 걱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내 아들의 혼인에 주례를 혼쾌히 맡아주고 나니, 오 시인의 아들 주례를 내가 서게 되는 별 일 아닌 듯싶은 소소한 즐거움도 함께 나누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스스로 나무꾼 시인이라고 소개하듯이 언제나 근면과 성실함으로 오랜 교직생활을 마치고 생거진천 生居鎭川 고향으로 돌아가 지극한 효심으로 모셨던 선친을 뒷산에 모시고 어머니와 함께 농사지으며 사는 촌로 村老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지만, 향리에서도 일을 멈추지 않아 포석 조명희 기념사업회 부회장, 진천문인협회 회장을 맡아 동분서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보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오랜 교직에 있다 보니 목을 많이 쓴 탓으로 몇 년 전 성대결절로 수술을 받고 나서 건강을 회복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이제는 조금 일을 줄일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천성이 부지런한 오 시인의 성격에 쉽사리 일을 놓지는 않을 듯도 합니다.

 

내 조그만 서재에 오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작은 연인들』(2013)과 시평집 『식탁 위에 올라온 시』, 2015년에 펴낸 중국어 판 오만환의 시와 시평집 『自然輿倫理』가 눈에 띱니다. 시류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에 기반을 둔 담백한 서정시를 일구어 온 오 시인의 풍모가 선연합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서로의 마음의 길은 넓고 그윽합니다. 언젠가 방문했던 교장실 벽에 결려 있던 시 「그네」가 생각나는 밤입니다.

2017년 8월 오만환 시인 진천 고향집에서 (좌) 심재추 박사(77학번), 오만환 시인. 그리고 나



'절대 믿음으로 매달려 / 일생을 산다 / 힘으로 밀면 힘있게 흔들리고 / 솟으라면 솟고 / 신바람으로 춤을 추다가 / 온기 남은 그 자리 / 마음 맞는 사람 찾기가 / 쉽기만 하다면/ 살아서 흔들리지 않기가 / 즐겁기만 하다면'

『문학의 집 서울』: 문학인에게 띄우는 편지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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