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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 듯 불교 아닌 종교, 원불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4. 21. 14:59

[김한수의 오마이갓]

불교인 듯 불교 아닌 종교, 원불교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1.04.21 00:00 | 수정 2021.04.21 00:00

 

 

 

 

 

전남 영광 영산성지의 일원상. 원불교는 성지와 교당 내외에 불상이나 창시자의 초상 대신 진리를 상징하는 일원상을 모신다. 그래서 원(圓)불교다. /원불교

 

오는 4월 28일은 원불교의 최대 명절인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입니다. ‘크게 깨달아 종교를 연 날’이란 뜻이지요. 원불교는 1916년 4월 28일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 대종사가 오랜 수련 끝에 깨달음을 얻은 날을 최대의 명절로 삼습니다. 원불교는 이날을 기준으로 삼아 원기(圓紀)를 계산합니다. 올해는 원기 106년입니다. 원불교는 수천년 역사가 즐비한 종교계에선 이제 갓 100살이 넘은 새 종교, 젊은 종교인 셈입니다.

 

◇ 106년 된 ‘젊은 종교’ 24개국서 교화 활동

원불교는 우리 종교계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갖습니다. 우선 토착 자생(自生) 종교입니다. 불교가 인도, 기독교가 이스라엘이 고향이라면, 원불교는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국내에 수많은 신흥 종교가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원불교는 100년을 넘기며 세계 24개국에서 성직자 100여명(현지인 20여명)이 교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원불교가 1세기를 넘어 건재한 이유는 ‘신식 종교’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중에 시작한 만큼 앞선 종교들의 장단점을 비교해 나쁜 점은 버리고 좋은 점을 살린 덕분이겠지요.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원불교

 

◇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

불교와의 연관성은 어떨까요. 한마디로 원불교는 ‘불교인 듯 불교가 아닌’ 종교입니다. 원불교의 사찰 격인 ‘교당’에 가면 불상(佛像)이 없습니다. 대신 중앙에 큰 원이 하나 있습니다. 진리를 상징하는 ‘일원상(一圓相)’입니다. 이는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과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오랜 구도(求道) 수련 생활 끝에 1916년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구호로 원불교를 창시했습니다. 근대 과학기술 문명이 국내에도 밀어닥치던 시대에 미래를 내다본 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1920년대 익산에 자리잡은 원불교의 중심이다. /원불교

교단 명칭이 처음부터 ‘원불교’는 아니었습니다. 1920년대 현재의 전북 익산으로 총부를 옮긴 후 붙인 이름은 ‘불법(佛法)연구회’였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깨달음을 얻은 후 여러 종교의 경전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불교의 ‘금강경’을 읽고는 “내가 도(道)를 얻은 경로와 내용이 석가모니 부처님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지요. 그래서 새 종교 단체의 이름을 불법연구회로 지었고, 광복 후에는 ‘원불교’로 개칭하게 된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태산 대종사가 불교 스님으로 출가한 후에 새 종파로 원불교를 창시한 것이 아니라 먼저 깨달은 후 비슷한 가르침을 금강경에서 발견했다는 순서입니다. 그리고 산중(山中) 불교가 아닌 생활 불교를 지향했지요. 성직자들의 헤어스타일과 복장도 불교와 다릅니다. 스님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삭발하는데 비해 원불교 성직자들은 남성은 자유, 여성은 쪽찐 머리를 합니다. 복장도 스님들은 회색 승복을 입는데, 원불교 남성 성직자는 양복에 셔츠깃만 다른 간편 복장, 여성 성직자는 검정 치마, 흰 저고리를 입습니다.

◇ 창시자 탄생일 아닌 깨달은 날이 최대 명절

앞서 말씀드렸지만 원불교 최대 명절은 창시자가 깨달은 날입니다. 창시자의 생일이 아니고요. 기독교의 성탄절, 불교의 부처님오신날 등 큰 명절은 창시자의 생일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태어난 원불교는 창시자가 태어난 것보다 깨달음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이날은 원불교 성직자들이 공동 생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창시자의 직계가족이 종단을 물려받지 않은 것도 특징이지요.

원불교는 초창기인 1918년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앞바다를 메우는 간척 사업을 벌여 3만평에 이르는 옥토를 만들었다. /원불교

 

◇ 초창기엔 저축조합과 간척사업부터

일반적으로 종교가 새로 창시되면 전도(傳道)에 열심입니다. 새로운 진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원불교는 창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저축조합과 방언 사업(간척 사업)이었습니다. 개교한 지 3년째인 1918년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앞바다를 메우는 사업에 나섰지요. 당시 이 지역은 농토도 없어서 매우 가난한 동네였다고 합니다. 3차에 걸친 간척사업 끝에 3만평에 이르는 정관평 너른 들이 생겼습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 즉 스스로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일을 몸소 실천한 것이자 신도들의 시주에 의지하는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 자립하는 노력을 기울 것입니다.

 

원불교의 전현직 최고 지도자. 왼쪽부터 좌산 이광정 상사, 전산 김주원 현 종법사, 경산 장응철 상사. /원불교

 

◇ 남녀, 출가재가 평등하게

또한 시작부터 남녀 평등, 출가·재가 평등을 지향했습니다. 원불교 성직자는 ‘교무’라고 부르는데, 여성 교무들의 맹활약이 유명합니다. 인도와 캄보디아 등 세계 55개국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 현지에서 ‘마더 테레사’에 빗대 ‘마더 박’으로 불리는 박청수(84) 교무 등이 대표적인 원불교 여성 성직자입니다. 원불교는 최고의 정신적 지도자를 ‘종법사’, 행정 최고 책임자는 ‘교정원장’으로 부릅니다. 각각 조계종으로 치면 ‘종정’과 ‘총무원장’에 해당하지요. 원불교는 이미 여성 교정원장을 배출했지요. 다만 아직 여성 종법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원불교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수위단(首位團)’이라고 부르는데, 전체 30여명 중 4분의 1 정도는 재가자입니다. 성직자들만으로 최고 의사 결정기구를 구성하는 다른 종교와는 구분되는 대목입니다.

절약 정신을 빼놓을 수 없지요. 원불교 성직자들의 ‘용금(用金)’ 즉 봉급은 ‘짜기로’ 유명합니다. 지금도 월 40만원대입니다. 여기에 배우자, 자녀 등이 있을 때는 수당이 추가돼 최대 300%까지 추가됩니다. 그래도 120만~140만원 정도이지요. 그래서 남성 교무의 배우자들은 대개 맞벌이를 합니다. 사명감이 없다면 버티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 10여년 전부턴 4대 종교 반열에

그렇지만 원불교는 10여년 전부터는 이른바 ‘국내 4대 종교’ 중 하나로 불립니다. 신도의 숫자로만 비교하면 2015년 통계청 자료 기준 개신교(960만) 불교(760만) 천주교(390만)에 비해 원불교는 8만 4000명 수준으로 엄청난 격차가 있지요. 그럼에도 ‘4대 종교’의 하나로 불리게 된 시작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당시 원불교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와 함께 이선종 서울교구장이 종교예식을 거행했지요. 전직 국가 원수의 장례식에 원불교가 공식적으로 참여한 첫 케이스였습니다. 일단 문이 열린 후로는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 때에도 원불교가 당당히 참여하게 됐습니다. 또 한 가지는 ‘군종 장교’입니다. 기존의 군종 장교는 개신교, 불교, 천주교가 파송하고 있었는데, 원불교가 2007년 합류했지요. 원불교가 국가 원수 장례식과 군종 장교에 참여하게 된 데 대해 종교계에선 ‘틈새’를 잘 활용했다고 봅니다. 다른 종교들이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슬기롭게 활동한 덕분에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뜻이지요. 사실 불교 군종 장교의 경우는 현재 조계종만 파송하고 있고 천태종, 진각종 등 다른 종단은 참여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원불교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불교인 듯 불교가 아닌’ 덕분에 별다른 반대 없이 군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원불교는 얼마 전 ‘이재용 삼성 부회장 기소’와 관련해 화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삼성가는 이 부회장의 외할머니인 고 김혜성 여사 때부터 원불교에 입교해 어머니 홍라희 여사 등이 원불교 신자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심의위원 15명 중 한 명이 이 부회장과 같은 원불교 신자라는 이유로 배제된 사실이 알려져 원불교측의 항의를 받고 검찰이 사과한 일이 있었지요. 불교, 개신교, 천주교 신자에 대해서도 종교가 같다는 이유로 심의위원에서 배제했겠느냐, 즉 종교차별이라는 것이었지요.

원불교 서울 시대의 중심이 될 서울 흑석동 소태산기념관의 야경. 2019년 개관했다. /원불교

원불교는 100주년을 맞아 2019년 서울 흑석동에 ‘소태산기념관’을 신축하고 서울 시대를 열었습니다. 2021년 1월에는 미국 종법사에 황도국 종사를 임명해 미국 등 해외 포교에도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100년 된 젊은 종교, 원불교가 어떤 미래를 열어갈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