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우암 송시열의 후손들이 터잡은 남해 바닷가 마을의 지킴이
[알립니다] Web 주소가 http:// 가 아닌, https:// 로 시작하는 웹페이지에서 나무편지를 '크롬'으로 수신하실 경우, 이미지가 모두 보실 수 없게 됐다고 합니다. 이는 https://로 시작하는 웹페이지의 보안정책 때문이랍니다. 이 경우, '크롬'이 아닌 '익스플로러' 등 다른 브라우저에서는 모두 정상적이라고 합니다. 빠른 시간 안에 더 좋은 대책을 찾아보겠습니다.
벌써 팔 년이나 지났습니다. “봄바람에 실려온 편지 한 장 달랑 들고 먼 길을 떠났다.”라고 시작하며, 한 그루의 큰 나무를 신문에 칼럼으로 쓴 게 말입니다. ‘봄바람에 실려온 편지’를 보낸 사람은 그때 대학에서 제가 진행하는 ‘콘텐츠 제작’ 수업을 수강하던 제자였습니다. 지금 그 친구는 어느 텔레비전의 주요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는 진행자가 됐습니다. 칼럼을 쓰고 다시 팔 년만에 찾은 이 느티나무가 있는 곳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은진송씨 집성촌인 경남 남해군 난음리 난음마을입니다.
느티나무는 마을 앞에 펼쳐진 너른 논을 거느리는 듯한 마을 수호목의 융융한 위용을 가졌습니다. 마침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들을 품은 너른 들녘의 빛깔이 고와서 주변 풍광은 더 없이 근사했습니다. 나무 풍광을 더 근사하게 하는 건, 나무 곁에 놓인 ‘난곡사’라는 한 채의 아담한 사당 건물입니다. 난곡사는 고려 후기에 성리학의 체계를 완성한 유학자, 백이정(1247∼1323)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지역 유림들이 세운 사당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의 잎이 예쁘게 잘 돋아나면 풍년이 들고, 잎이 잘 나지 않으면 흉년이 들 것”을 예측한다고 제자인 그 친구가 편지에 썼고, 실제로 제가 마을에서 뵈었던 어르신들도 그런 말씀을 하셨스니다. 물론 이같은 이야기는 난음마을 뿐 아니라, 큰 나무가 서 있는 농촌 마을이라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지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내내 나무를 바라보며, 그 그늘 아래서 산다고 해도 되지요. 농사 일이 바빠지면 모두 저 나무 앞에 모여들지요. 한 여름에는 나무 그늘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선답니다.” 팔년 전 그때 마을 어른이 나눠주신 말씀입니다.
느티나무보다는 ‘정자나무’로 더 많이 불리는 나무는 얼핏 보아도 난음마을의 중심이자 가장 상쾌한 쉼터입니다. 엊그제 나무를 찾아갔을 때에는 마을 어른 모두가 분주했습니다. 가을 갈무리 준비로 모두가 들녘에서 바쁘게 오가는 중이었지요. 나무 그늘이 아무리 삽상해도 지금은 나무 그늘에 들어설 겨를이 없는 겁니다. 임자가 찾아오지 않는 나무 그늘의 벤 앞에는 은진송씨의 조상인 우암 송시열의 흉상이 자존심처럼 꼿꼿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이 남해군 난음리에 터잡은 조상들은 7백 년 전까지 송시열의 고장인 대전 인근에 살았다고 합니다.
7백 년쯤 살아온 남해 난음리 난곡사 느티나무는 큰 나무입니다. 가지는 사방으로 20m 쯤 펼쳤고, 키는 19m,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는 6m나 됩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나무 주변에 경관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기에 실제 크기보다 더 크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나무 한 그루에서 지금 서울의 어느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애면글면하고 있을 젊은 제자를 떠올렸습니다.
주인들이 들에 나가 텅빈 정자나무 그늘의 벤치에 앉아 한참 나무를 바라보자니, 지나온 날들의 이야기들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느티나무 잎새에 스미는 초가을 향기 따라 사람의 얼굴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갑니다.
한가위 명절입니다.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르게 치러야 할 명절이 되겠지요. 그래도 모두가 풍요로운 명절 맞이하시기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 나뭇잎에 스치는 가을 바람 따라 정들었던 그들을 떠올리며 9월 28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솔숲닷컴(http://solsup.com)의 '추천하기'게시판에 '나무 편지'를 추천하실 분을 알려 주세요.
접속이 어려우시면 추천하실 분의 성함과 이메일 주소를 이 편지의 답장으로 보내주십시오.
○●○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편지]는 2020/09/28 현재, 회원님의 수신동의 여부를 확인하고 보내드립니다. [나무편지]를 받지 않으시려면 [수신거부]를 클릭하십시오. 솔숲닷컴 | http://www.solsup.com | 고규홍 | e-mail:gohkh@solsup.com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 |
'고규홍의 나무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를 찾아서] 당신은 없는데…… 홀로 단풍만 보다가 돌아왔습니다 (0) | 2020.10.28 |
---|---|
곡식과 새떼와 사람, 그리고 나무가 지어내는 아름다운 풍경 (0) | 2020.10.14 |
정갈한 마을, 동네 어귀에 단정한 자태로 우뚝 선 왕버들 (0) | 2020.09.21 |
이 땅의 큰 나무들에게 가장 알맞춤한 자리를 생각합니다 (0) | 2020.09.14 |
소원 비는 한 그루의 회화나무에게 이 땅의 평안을 빌며 (0) | 2020.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