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정갈한 마을, 동네 어귀에 단정한 자태로 우뚝 선 왕버들
코로나 사태로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마을회관과 그 앞으로 펼쳐진 마을 입구의 공터가 환합니다. 마을회관 앞으로는 작은 화단이 이어지고, 화단 안쪽에는 ‘죽순정(竹筍亭)’이라는 편액을 건 작은 정자가 있습니다. ‘대밭’을 뜻하는 ‘죽전(竹田)’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의 정자 이름으로는 제법 운치가 있습니다. 주변에 잘 가꾼 화단 때문일 겁니다. 화단 곁으로는 ‘죽순양어장’이라는 표지석이 큼지막하게 세워진 널찍한 연못이 펼쳐지고. 양어장 안에는 지금은 멈춰진 물레방아가 물이 아니라 바람에 꾸물거립니다. 정갈한 풍경입니다.
정갈한 마을 풍경의 백미는 무엇보다 공터 한켠에 우뚝 서 있는 잘 생긴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상주 죽전동 왕버들〉입니다.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 이미 나무의 크기와 아름다움은 처음 이 마을에 들어서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더구나 곁의 너른 공터에 홀로 우뚝 서 있는 품은 더 없이 좋습니다. 나무 곁으로는 창고 건물이 있는데, 건물 외벽에는 자전거 타는 어린 아이 한 명과 그 곁에서 잠자리채를 들고 잠자리를 잡는 아이가 동화처럼 그려졌고, 아이 곁에는 다시 또 한 그루의 나무가 버티고 서 있는데 나무 반대편에도 한 아이가 활짝 웃는 모습이 그려졌어요. 마을에 들어서는 첫 느낌이 참 좋습니다.
삼백 년 쯤 되었다는 상주 죽전동 왕버들은 높이가 이십미터에 이르는 큰 나무입니다. 어른 가슴높이쯤에서 줄기가 둘로 갈라졌는데, 이 부분의 둘레는 오미터를 넘습니다. 무척 큰 나무입니다. 왕버들 가운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꼽는 천연기념물 제296호인 김제 종덕리 왕버들이 수령 300년에 높이 12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 8.8미터인 것과 비교하면 결코 뒤지지 않는 큰 나무라 할 수 있지요. 사실 300년이라는 수령은 다른 큰 나무에 비해 그리 길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을 좋아해서 주로 물가에서 살아가는 왕버들은 습한 기운을 좋아해, 잘 썩기 때문에 일찌감치 수명을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300년 수령은 우리나라 왕버들 가운데에는 비교적 늙은 나무 축에 속할테고, 그처럼 늙은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건강하고 아름다운 수형을 갖춘 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80가구 정도로 구성된 아담한 마을, 상주 죽전동에서 만난 크고 아름다운 왕버들 이야기였습니다. 이 마을에서 오래 살았든, 외지에서 갓 들어왔든, 심지어 잠시 지나치는 길에 이 마을을 들렀든, 누구에게라도 이 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나무를 중심으로 한 마을 어귀 너른 마당의 풍광이라는 생각입니다.
오늘의 《나무편지》는 이렇게 여밉니다. 이 나무 앞에서 한 노인을 만나 뵙고 짧지 않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나누었는데요. 나중에 짬이 되면 그 어른과 나누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지나는 사람에게 마을의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나무를 생각하며 9월 21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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