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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나무와 더불어 살던 자리에 길을 내고 사람은 떠나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6. 9. 11:29

[나무를 찾아서] 나무와 더불어 살던 자리에 길을 내고 사람은 떠나고

이른 아침, 작업실까지 천천히 걸을 때면 어김없이 알싸한 향기에 취합니다. KF94 마스크로 꼭꼭 막은 콧속으로 스미는 향기는 쥐똥나무 꽃에서 흘러나온 겁니다. 배경으로 피어있는 장미 꽃의 향기를 훨씬 뛰어넘는 향기입니다. 누가 뭐래도 이 즈음, 우리 마을의 주인공은 쥐똥나무입니다. 사실 이 마을의 원래 주인공은 복사나무였습니다. 여기는 오래 전부터 복숭아의 산지로 유명한 부천입니다. 지금 제가 걷는 이 길은 제가 대학생 즈음이던 젊은 시절에는 복숭아 과수원이었습니다. 그 자리를 갈아엎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를 세운 거죠. 이제는 복숭아도 복사나무도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마을마다 그런 대표 나무가 있습니다.

○ 감나무 … 명품 곶감을 내는 상주의 대표적인 나무 ○

몇 차례에 걸쳐 경상북도 상주 지역을 답사하는 중입니다. 상주 지역에도 대표나무가 있지요. 상주는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이라고 불렸습니다. 쌀, 비단, 곶감을 가리키는 건데요, 그것들의 상징 색깔이 흰 색이라는 겁니다. 백미로도 불리는 하얀 쌀, 비단을 잣는 하얀 명주실, 곶감의 겉에 뽀얗게 일어나는 하얀 가루를 상징하는 거죠. 이 가운데 명주실을 짓는 누에를 잘 키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누에의 먹이로 요긴한 잎을 내는 뽕나무입니다. 상주는 물론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상주의 뽕나무 이야기는 지난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상주를 상징하는 곶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감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주시를 대표하는 나무는 뽕나무와 감나무라고 해야 할 겁니다. 당연히 산림청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상주시의 나무 가운데에는 뽕나무와 감나무가 적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 비하면 분명히 많습니다. 하지만 실용적인 이유로 키우는 나무가 대부분이어서, 상징이 될 만한 한 그루의 큰 나무를 찾는 건 쉽지 않습니다. 뽕밭이 거의 사라진 와중에 옛 문화의 상징으로 남은 큰 나무는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감나무는 조금 다릅니다. 상주 지역을 지나다 보면 보호수로 지정한 감나무가 아니라 해도 여전히 곳곳에서 감나무 과수원을 만날 수 있거든요.

○ 실용적인 요구에 따라 큰 나무로 자라기 어려워 ○

그러다보니, 감나무는 과수원에서 사람의 손을 타고 길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을의 당산나무나 정자나무처럼 자연스럽게 큰 나무로 키워지는 노거수 감나무를 만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번 상주 지역 답사에서 몇 그루의 큰 감나무를 만났습니다. 한 그루는 과수원 가장자리에 우뚝 서 있는 한 그루의 감나무였습니다. 마침 과수원을 일구는 젊은 주인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지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일구던 과수원을 물려받았다는 그는 과수원에서 그 큰 나무를 괏원에서 가장 큰 나무이며, 아버지께서도 아끼던 나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과수원 가장자리에 서 있는 그 감나무는 과수원 안의 다른 감나무와는 사뭇 다른 큰 나무였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사진 속의 감나무는 그 나무가 아니고요, 상주 시내 외곽의 한적한 국도를 지나다가 도로 가장자리의 묵정밭에서 만난 나무입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재우친 끝에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서쪽으로 해가 떨어지는 늦은 오후, 천천히 가던 길가에 홀로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보였습니다. 그리 큰 나무는 아니었는데, 오후의 햇살을 등진 나무 곁으로 번지는 나무의 ‘아우라’가 근사했습니다. 흔히 보는 느티나무 종류처럼 큰 나무는 분명히 아니었지만, 놓치기 아까운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들짝 자동차를 멈춰 세우고, 천천히 걸어서 나무 곁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 늙고 큰 나무보다 젊고 싱그러운 나무를 더 많이 키워 ○

산림청에서 2011년에 보호수로 지정한 200년 된 감나무였습니다. 나무의 높이는 7미터이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2.5미터 정도 되는 나무입니다. 이 정도면 큰 나무라고 하기에는 좀 작은 규모입니다. 그래도 여기는 곶감의 고장 상주입니다. 거의 모든 감나무를 과수원에서 키우는 곳이었기에 오래 되어 열매가 부실해지는 감나무는 하나 둘 뽑아내고, 생식력이 왕성한 젊고 싱싱한 나무로 바꾸어 심었던 이 지역의 오래 된 문화를 생각해 보면, 귀한 나무가 아닐 수 없는 거죠. 자세한 나무의 내력을 이야기해 줄 사람을 찾기 어려운 곳이어서, 사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면 이 자리는 필경 얼마 전까지 과수원이었을 겁니다.

〈상주 유곡리 감나무〉라고 불러야 할 이 감나무 곁에는 다른 나무들이 없지만, 도로 곁의 양쪽으로는 여전히 감나무가 즐비합니다. 낙동강 지류인 ‘장천’이라는 이름의 강물이 흐르는 도로 건너 아래 쪽의 언덕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호수인 〈상주 유곡리 감나무〉 곁 대략 사방 20여 미터 정도만 비어있을 뿐입니다. 오래 전에 이 마을의 한 농부는 지금의 〈상주 유곡리 감나무〉를 포함해 여러 그루의 감나무를 이 언덕에 심어 키웠을 겁니다. 감나무의 나이처럼 200년 전의 어떤 조상이 처음 시작했을 수도 있고, 잘 자란 이 감나무 곁에 과수원을 일궜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의 감나무들이 지금 〈상주 유곡리 감나무〉 곁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자리의 나무들을 그의 후손들이 여전히 관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사람 떠난 자리에 사람의 자취를 간직하고 홀로 남아 ○

과수원 농사를 그만 두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아직 〈상주 유곡리 감나무〉 곁의 다른 감나무들로 과수 농사를 이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예전만큼 본격적인 농사는 아니라고 보입니다. 무슨 이유였을까요. 그건 아마도 과수원 중간으로 �린 도로 때문이었을 겁니다. 나무가 있는 자리도 그렇지만, 도로 건너편으로도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언덕까지, 만일 도로만 아니었다면 과수원 자리로 매우 알맞춤한 자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때 감나무 농사를 짓던 분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산림청 보호수 자료를 보니, 나무의 소유자가 조 아무개로 돼 있지만, 찾아 뵙는 일은 뒤로 미루고 궁금증을 남겨두었습니다.

나무를 베고, 사람의 보금자리를 짓고, 그 곁에 다시 나무를 심고, 다시 그 자리에 사람의 길을 내고, 다시 사람은 떠나고 ……. 나무는 그렇게 우리 곁에서 우리 삶의 문화와 역사를 오래오래 간직합니다. 나무를 찾는 일은 결국 사람의 흔적을 찾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또 나무를 찾아, 나무 안에 담긴 사람의 향기를 찾아 길 위에 오를 채비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다녀와 소식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큰 나무를 찾아, 아름다운 사람을 찾아 길 위에 오르며 6월 8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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