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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리얼리즘 문학의 상징, '폐허'와 '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1. 12. 23:53

요즘 리얼리즘 문학의 상징, '폐허'와 '풀'

 

  • 황석영 신작 장편 '해질 무렵'
    백무산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
황석영(왼쪽), 백무산.
황석영(왼쪽), 백무산.
한국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과 소설가가 나란히 '폐허에서 싹트는 풀의 생명력'을 현실 극복의 상징으로 삼았다. 소설가 황석영은 최근 펴낸 신작 장편 '해질 무렵'(문학동네)에서 "쉴 새 없이 달려왔지만 돌아보니 걸어온 자리마다 폐허"라며 산업화 세대의 허탈감을 그렸다. 시인 백무산도 새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창비)를 통해 세월호 사태를 비롯한 오늘의 현실을 '인간의 폐허'라고 묘사했다. 두 문인은 그런 폐허에서 싹트는 풀을 통해 역사의 주인으로서 민초(民草)를 강조했다.

황석영 소설은 이순(耳順)을 넘긴 유명 건축가가 재개발로 표현된 산업화와 도시화의 폭력을 회한(悔恨)의 시선으로 되돌아보는 이야기다. '반쯤 무너져내린 집들과 폐허 위에서 녹슬어가고 있는 버려진 승용차 껍데기가 벌판 가장자리에 멈춰서 있다. 인적 끊긴 골목에 제멋대로 자라난 잡초들이 풀숲을 이루었고…'. 이 소설은 건축가의 회상과 현재를 오가는 한편 우리 시대의 고달픈 청년 세대를 대표하는 여성 연극연출가를 등장시킨다. 노년 세대와 청년 세대의 화자가 번갈아 나오는 이중주(二重奏) 구조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건축가의 첫사랑이었지만 도시빈민층을 벗어나지 못한 여성의 수기(手記)가 제3의 음성을 낸다. 건축가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개발의 연대(年代) 속에서 잃어버린 삶의 가치에 대해 탄식한다. 반면 젊은 여성 연출가는 오늘의 현실에 절망한다. 그녀는 낮밤으로 아르바이트를 뛰어도 예술가로 살기 위한 생계비를 벌지 못한다. 건축가의 첫사랑 여성도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는 빈 화분에 수북이 자란 강아지풀을 여성 연출가에게 남겨놓는다. 동시에 건축가도 마당에서 저절로 솟아난 강아지풀을 발견하게 된다. 풀은 계층과 세대가 다른 세 인물이 실제로는 똑같이 고통받고 고뇌하는 민초의 구성원임을 암시하는 상징적 이미지가 된다.

올해로 이순(耳順)을 맞은 노동자 시인 백무산은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로 최근 창비가 주관하는 제17회 백석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세월호 사태 이후 현실을 보며 '무엇을 인양해야 하는가'라고 물은 뒤 '그것은 희망으로 은폐된 폐허다 인양해야 할 것은 폐허다 인간의 폐허다'라고 절규했다. 그러면서 그 는 '세상을 바꾸는 힘은 창검이 아니라 노래'라며 시의 리얼리즘 정신으로 굳건한 현실의 벽에 '틈'을 만드는 민초의 저항을 강조한다. '갈라진 틈에 어디선가/ 깃털처럼 부드러운 풀씨가 찾아온다/(…)/틈에는 풀씨가 내려앉고/ 풀은 흙에 뿌리 내리는 것이 아니라/ 풀이 흙을 만들어간다/ 틈이 자라 사막을 만들어갈 때/ 풀은 최선을 다해 흙을 만들어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