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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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중얼거리다

달리기의 비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1. 4. 11:00

챠트를 보면서 의사가 말했다.

“ 지난 4월에 오셨는데.. 에구 퇴행성 관절염도 있고 ..”

달리기가 취미인 나는 시간이 나는대로 뛴다. 어제 중앙일보 마라톤대회 중계를 보면서 42.195Km의 레이스를 마음 속에 그렸다.

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오직 내 몸 하나에 의지하고 내 몸을 믿어야만 가능한 그 마지막 골인 순간의 희열은 뛰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의사는 발바닥에서 고름을 빼고 말했다.

“절대 앞으로는 달리기를 하면 안 됩니다!”

발바닥이 시큰거리고 주사 맞은 엉덩이가 얼얼하다.

 

 

천국에 관한 비망록 / 나호열 

  -42.195km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옥을 통과해야만 한다

비록 이 길이 지옥에서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이 길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태어난 곳으로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이 길이 죽음으로 완성되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너무 짧거나 아니면 너무 긴 이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동전 떨어지듯 상쾌한 햇빛을 밟으며

헤엄쳐 가거나 날아가거나

짙어지는 안개 속을 해쳐 나가기 위해서는

차라리 눈감고 뛰어가리라

지옥은 아름답다 그리고 풍요롭다

고통의 신음과 환희의 웃음소리가

꿀물처럼 갈증을 일으킨다

아름다운 사람아, 이윽고 내가 너에게 닿을 때

풀린 다리와 가쁜 숨과 땀내 가득한 한마디 말로

굳게 닫힌 천국의 문이 열리리라

기다림으로 황폐해진 정원, 그 가슴팍에

한 톨의 검은 씨앗으로 너의 가슴에 깊이 파묻히련다

산도 넘다 보면 강이 되더라

흘러가다 보면 강도 산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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