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혼자 중얼거리다

몽유의 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0. 25. 15:29

 

 

지난 밤에 먼 길을 다녀왔다. 몽유의 길이었다고 해도 다리가 아프다.

아침 일찍 문화원에 가서 시우들과 문학과 예술을 이야기하고 점심 먹고 집에 돌아오니

화분 가득 사랑초가 꽃을 피우고 있다. 15년 넘게 한 화분 안에서 계절을 가리지 않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

 

 

꽃, 사랑꽃들 /나호열

 

잎사귀는 네잎 클로버, 꽃은 패랭이꽃을 닮았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국화도 아니고 매운 바람 맞서는 매화는 더더욱 아니고, 뒤에 숨긴 꽃말은 아예 없다. 사랑꽃 이라니, 곰곰하고 궁금하다

 

물이 있으면, 햇살이 있으면 그저 얼굴 내밀었다가 저녁이면 고개 수그리는, 저게 무슨 사랑 꽃이야!

 

푼수 같은, 질 줄 모르고 그저 피기만 하는 몸짓들을 바라보면, 향기 없는 것이... 밥 먹고, 잠자고, 일어나서 일하는 것들이 죄다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미련한 저 짓이 수고스러워 보여

 

이제는 잎 지고 꽃도 떨어지라고 겨우 내내 찬 바람 부는 베란다에 내다 두었다.

 

아, 천지에 가득한 저 꽃,

세상 어둡고 매서워

이제는 영영 사라져버린 줄 알았는데,

동토를 비집고 나오는 저 푸른 손

발그스름 펼쳐 보이는 저 얼굴

세상의 즐거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솎아내고 한동안 물을 주지 않아도 돋아나는 생명력 앞에 문득 내 안에도 그렇게 피는 사랑꽃이 있음을 느낄 때 간밤의 먼 길이 전혀 수고스럽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 버림 받아 우유로 키운 우리집 고양이 king이 꽃을 먹고 있다.

내가 피운 꽃은 누구의 양식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

 

 

'혼자 중얼거리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리기의 비애   (0) 2013.11.04
산이 좋다  (0) 2013.10.27
이순  (0) 2013.09.26
슬픔도 오래 되면 울울해진다.  (0) 2013.07.10
희망이라는 것  (0) 2013.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