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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강물에 대한 예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9. 23. 00:53

 

 

영주 무섬마을 2011. 6

 

강물에 대한 예의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경북 봉화 어느 깊은 골짜기에서 발걸음을 시작한 내성천乃城川은 봉화, 영주, 예천을 거쳐 회룡포를 돌아 낙동강과 몸을 섞는다. 큰 고을과 작은 마을을 지나면서 물도리동을 만들어 영주의 무섬마을과 예천의 선몽대, 삼강이 만나는 회룡포의 수려한 풍광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내어준다. 무섬마을에서는 유구한 양반가의 종택과 조지훈의 처가가 있어 그윽한 시향 詩香과 더불어 애써 외걸음을 걸어야 하는 외나무다리를 걷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느리게 예천을 지나 선몽대에 올라 강심에 발을 묻은 백로를 바라다보면 어느새 뉘엿뉘엿 노을이 강물에 붉은 물감을 풀어놓아 노송에 숨어 있을 듯한 퇴계의 그림자를 좇을 수도 있다. 회룡포를 지나 삼강주막( 경상북도 민속자료 134호)은 그 옛날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장삼이사들의 쉼터로서 그 흔적을 힘들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내성천은 강하지 않고 급하지 않은 속내로 결 고은 모래와 함께 흘러들어 아낌없이 우리들의 삶을 보듬어 준다. 한 여름 큰물이 지지만 않으면 내성천은 가슴께에 출렁거리는 수줍은 미소로 누구에게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삶은 강에 기대어 있고 목숨줄을 대고 있으면서도 강에 대한 예의를 잊어버리기 일쑤다. 지난 정부의 치적(?)인 4대강 정비로 비롯된 여파가 이곳 내성천에도 들어차 영주시 남쪽과 무섬마을 위쪽 그 사이에 영주댐이 건설되고 있다. 올해 말 완공 예정이었으나 댐 건설에 반대하는 여론과 보상 등등의 문제로 현재 공정은 이제서야 50% 선을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댐 건설의 목적이 홍수조절과 원활한 용수 공급이라고 하는데 내성천에 몸을 기대고 있는 주민들의 생각은 이와는 다른 것 같으니 문제인 것이다. 댐의 건설로 모래의 퇴적이 어렵게 되고 댐 하류 지역은 건천 乾川이 되어 내성천의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귀에 익숙한 이 ‘생태生態’라는 용어는 그러나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구호가 아니다. 자연을 대함에 있어 환경은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인간의 복리를 증진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용어라면 생태生態는 말 그대로 만물의 생명을 활동을 보존하는 것이므로 경제적 손실과 생활의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실천적 의지로 읽어야하는 것이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묶이고 여가활동이 원활해지면서 우리는 비경과 유적에 쉽게 닿을 수 있다. 방송의 위력은 사람들을 이러한 비경과 유적에 불러 모으고 그 사람들을 좆아 길이 넓혀지고 가게가 들어서고 자연스럽게 수치를 모르는 무분별한 발자국들이 쓰레기로 남는다. 결국 경제적 논리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으로 비경과 유적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우리는 진정한 생태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차를 저 멀리 내쳐두고 땀내 나게 걸어야 만날 수 있는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단지 추억거리를 만들고 사진을 남기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자연의 어제를 더듬을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비경 속에, 유적 가까이에 삶을 기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이 필요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내성천은 오늘도 흐른다. 모래톱엔 새들의 발자국이 찍히고 말없이 자신의 몸을 인간에게 내어준다. 버르장머리 없는 인간들에게 생명에 대한 예의가 어떤 것인지를 묵언으로 들려준다.

 

강물에 대한 예의 / 나호열

 

아무도 저 문장을 바꾸거나 되돌릴 수는 없다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 이야기인지

옮겨 적을 수도 없는 비의를 굳이 알아서 무엇 하리

한 어둠이 다른 어둠에 손을 얹듯이

어느 쪽을 열어도 깊이 묻혀버리는

이 미끌거리는 영혼을 위하여 다만 신발을 벗을 뿐

추억을 버릴 때도

그리움을 씻어낼 때도 여기 서 있었으나

한 번도 그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구나

팽팽하게 잡아당긴 물살이 잠시 풀릴 때

언뜻언뜻 비치는 눈물이 고요하다

 

강물에 돌을 던지지 말 것

그 속의 어느 영혼이 아파할지 모르므로

성급하게 건너가려고 발을 담그지 말 것

우리는 이미 흘러가기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었던가

 

완성되는 순간 허물어져 버리는

완벽한 죽음이 강물로 현현 顯現되고 있지 않은가

 

예천 선몽대에서 본 내성천 2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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