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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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바람따라(여행기)

두물머리에가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4. 18. 23:29

 

 

 

 

두물머리에가다

 

 

덕소 도곡리 한국탁본자료박물관에 갔다가 두물머리에 들렀다. 예전의 고즈녁한 풍경은 사라지고 상춘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두물머리는 번잡했다. 저 멀리 태백의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남한강과 금강산 언저리쯤에서 발걸음을 뗀 북한강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류들을 품에 안고 흐르다가 드디어 이곳 두물머리에서 몸을 섞는 장엄함에 어찌 시인묵객들의 마음만 유려하겠는가! 강을 향하여 서 있는 몇 그루의 고목 앞에서 사진을 찍고 마음 깊숙이 추억으로 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이 짧은 시간이 향기로운 까닭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합침'이다. 엉퀴고 소용돌이치는 속마음을 거두고 수평으로 흐르는 저 강물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힘이다.

길은 번듯해지고 편의시설이 늘어나 그 옛날의 한적한 평화로움은 사라졌으나 두물머리를 바라보는 마음은 여전하다

 

 

양수리에서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양수리에 온다

날개죽지를 상한 물총새

뛰어들까 말까 망설이는 갈대숲이

귓가에 물소리를 가까이 적신다

신문지에 가득 담겼던 세상 일이

푸른 리트머스 시험지에 녹아

깊이를 알 수 없는 흐름으로 덮혀가고

가진 것 없으면서 가난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생명을 키운다

슬픔도 잘만 익으면

제 맛 나는 술이 되는가

흙탕이 덮여오는 세월도 스스로 걸러

함부로 노하지 않는다면 몸과 몸을 부딪쳐도 나무랄 일 없겠네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양수리에 와서

노을지는 팔당댐을 바라보면서

마음 속에 갈대숲과 물총새의 비상을 가득 담는다

물보라로 사라지는 시간의 저 너머로

낚싯대를 길게 길게 내던지면서

 

시집 [칼과 집], 시와시학사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