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초봄 부근 / 나호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0. 26. 21:23

 

초봄 부근 / 나호열

 

 

모닥불이 지펴졌던 자리

빈 소주병 몇 개 뒹굴고

잿더미를 헤치며 잡초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내겐 꽃이란 없어

칼날의 몸짓으로 푸른 팔뚝을 내젓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점령해버릴 공터에

시커멓게 타들어가며 그을린 나무들처럼

모닥불에 얹혀졌던 언 손의 너울대는 그림자

 

무심하게 지나가다가

무심하지 않게 되돌아 선 자리

아, 나는 불이었다

예쁜 가슴에 살며시 얹히는

그런 꽃이 되고 싶었는데

다가오지마 팔을 내저을수록

붉은 장미의 화염이었다고

달려오는 사람아

오늘은 불길을 낮추어

그 옆에 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