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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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내 생각

수행 修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12. 11. 12:34

 

수행 修行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자기 자식이라도 호불호의 미묘함이 있고 애틋함의 차이가 있다. 그런 까닭에 내가 쓴 글이라고 하더라도 다시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글이 있는가하면, 스스로 대견해 보이기까지 하는 글이 있다. 지금이야 어림없는 일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 편의 시를 단숨에 써내려가곤 했다. 물론 물이 차올라야 넘치듯 오래 마음 속에 차오르고 익어가는 사유의 시간이 있었음에 틀림없지만 단번에 쓰는 글이란 극명하게 글의 성패가 가려지는 법이다. 「수행」이란 시도 가필 없이 한 번에 내려 쓴 것이다. 짧은 시를 쓰는 입장에서 「수행」은 제법 긴 시에 속하는데 나름대로 뜻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끝을 마감한 시라는 미숙한 자부심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어릴 때 환경이 그러하기도 했지만 손수 빨래를 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보니 게으르고 참을성 없는 내가 이 나이 되도록 투덜대지 않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세탁소에 맡겨야 하는 양복은 어림없는 일이지만 셔츠나 속옷, 바지 등을 빨고 다림질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장성한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교복이며, 셔츠를 빨고, 말리고 다림질하는 일 또한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졌을 때 우리 아이들은 한참 질풍노도의 시기였고, 그런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주머니는 비어 있었고, 속죄의 심정으로, 감사의 마음으로 나는 흙 묻고 때에 절은 아이들의 옷을 빨면서 증오와 번민이 가득한 내 마음을 문질러 대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변함없이 빨래하고 다림질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지만 우리 인생 또한 그런 일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내가, 보잘 것 없는 나를 스스로 위로하는 ‘수행’의 의미를 체득하는 즐거움을 「수행」을 읽으며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修行 / 나호열

 

내가 오랫동안 해온 일은 무릎 꿇는 일이었다

수치도 괴로움도 없이

물 흐르는 소리를 오래 듣거나

달구어진 인두를 다루는 일이었다

오늘 벗어 던진 허물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때와 얼룩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함부로 팽개치지 않는 사람은

자동세탁기를 믿지 않는다

성급하게 때와 얼룩을 지우려고

자신의 허물을 빡빡하게 문지르지 않는다

마음으로 때를 지우고

마음으로 얼룩을 지운다

물은 그 때 비로소 내 마음을 데리고

때와 얼룩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빨랫줄에 걸려 있는 어제의 깃발들을 내리고

나는 다시 무릎을 꿇는다

때와 얼룩을 지웠다고 어제의 허물이

옷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본의 아니게 구겨진 내 삶처럼

무늬들의 자리를 되찾기에는 또 한 번의

형벌이 남겨져 있다

쓸데없이 잡힌 시름처럼 주름은

뜨거운 다리미의 눌림 속에 펴진다

내 살갗이 데이는 것처럼 마음으로 펴지 않으면

어제의 허물은 몇 개의 새로운 주름을 만들어 놓고 만다

부비고, 주무르고, 헹구고, 펴고, 누르고, 걸고

평생을 허물을 벗기 위해

오늘도 무릎 꿇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