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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 경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2. 5. 23:19

그녀의 첫 경험

윤채원

 

 

 조금 망설여지긴 했지만 당당하게 옷을 벗었다. 어차피 벗어야하기에, 아니 벗으려고 온 것이기에 거리낄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누구나 옷을 벗어야만 목적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곳이 아니던가.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가 되어서도 부끄럽기는커녕 마치 시골장터처럼 소란스러울 뿐이다.

 

 일부러 근처에서 시설이 제일 좋다는 곳을 찾았다.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였지만 구릿빛 얼굴에서는 긴장한 기색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 역시 속으론 살짝 긴장을 하고 있는 터였다. 태연한 척 씩씩하게 옷을 벗어던진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마치 팔려온 몸종이 주인의 허락을 기다리는 것처럼 잔뜩 주눅이 들어 바들바들 떨기까지 했다.

 

“빨리 벗어요, 처음에만 부끄럽지 금방 괜찮아져요” 나의 재촉에도 벌 받는 어린아이처럼 다소곳한 그녀는 미동도 않고 서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이 귀여워 그녀에게 다가가니 흠칫 놀라며 벗은 내 몸을 곁눈질로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를 돌려세운 그녀가 용기를 내어 옷을 벗기 시작한다. 드디어 헐렁한 옷에 가려졌던 그녀의 속살이 드러났다. 만삭인 그녀의 배는 마치 큰바가지를 엎어 놓았거나 풍선에 바람을 잔뜩 불어 넣은 것처럼 잔뜩 솟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20대 초반의 그녀는 다문화가정 멘토링 사업을 통해 만난 친구다. 알뜰하고 싹싹한 그녀는 이제 엄마가 된지 석 달이 겨우 지난 새내기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면서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해 서먹해하던 우리가 마음을 열 수 있게 된 것은 그녀의 첫 경험에 내가 동참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내와 함께 목욕탕을 다녀와 주길 바란다는 그녀의 남편 전화를 받고 조금 당혹스러웠다. 평소 가까운 친구와도 함께 다니지 않던 나였기에 그 일이 내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가 한국생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생활코디로 봉사를 하고 있는 처지라서 외면할 수도 없고 난감했다.

 

 며칠 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니 집안에선 티격태격 작은 실랑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울상이 된 그녀는 목욕탕에 가면 정말 옷을 다 벗는 거냐며 내게 물어왔다. 그 곳에 가면 누구나 옷을 벗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지만 지금 싫으면 다음기회에 가자며 황급히 자리를 일어섰다. 아마도 그녀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것이 나 역시 부담스러운 일이라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따라 나오며 남편의 기색을 살피는가 싶더니 그녀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 목욕탕 가요”라며 내 손을 잡는다. 아마도 남편의 불편한 심기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자신의 몸을 씻는 문제까지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아야하는 그녀에게 측은지심이 생겼다. 대중탕이라는 문화가 없는 곳에서 살아 온 그녀로서는 아무리 몸을 씻기 위함이라도 낯선 사람들 틈에서 옷을 벗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게 분명하다.

 

 한국으로 시집온 지 겨우 8개월밖에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운 입장인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는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이 분명하다. 어쨌든 그녀는 현실을 인식하고 용감하게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곳엔 이미 많은 벌거숭이들이 자리를 잡고앉아 몸을 씻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그녀는 어미 소를 따라온 송아지마냥 찰싹 붙어 앉아 눈치를 살피며 나의 행동을 관찰하며 그대로 따라 하려고 애를 쓴다. 샤워기로 몸을 씻어내고 거품을 내어 헹구는가 싶더니 어느새 앞에 달린 거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 모습을 훔쳐보자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외모와 피부색이 조금 달라 보이고 아직 앳된 외모인데 만삭인 것이 불안하고 신기해보였는지 주위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어디에서 왔는지, 몇 살인지, 출산 예정일은 언제인지,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는지 이것저것 질문이 쏟아지자 당황한 그녀는 눈빛으로 구원요청을 보낸다. 그녀가 당황하지 않도록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급기야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은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어린 손녀에게 하듯 그녀의 등을 밀어주고 만삭의 배를 보며 아들, 딸을 점치기까지 한다. 긴장한 탓인지 그녀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신혼부부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살며 한국 사람의 아기를 낳고 사는 그들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길러주어야 한다. 결혼을 목적으로 한국에 온 그들에게  빠른 적응과 안정적 정착을 위해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녀들이 행복해야 우리의 미래도 행복할 수 있기에 편견 없이 그들을 받아들이고 배려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의 지나친 관심이 그들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지혜롭게 다가가야 한다.

 

 그녀가 첫 경험을 시작한 지 30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덥다며 나가자고 조른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물기가 채 닦이지 않은 몸으로 급하게 옷을 입느라 애를 쓴다. 빨리 이곳을 탈피하고 싶은 눈치다. 첫 경험을 무사히 치러낸 그녀에게 잠시 숨을 고르라며 찬 음료수를 건넸더니 단번에 마셔 버렸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나의 질문에 대답대신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지 막상 시작하고 나면 그 다음은 쉬운 법이라는 것을 어느새 그녀도 알게 되었나보다. 이후로 종종 목욕탕 가자며 전화를 하더니 어느 날은 베트남친구를 데리고 나와 함께 다니다보니 어느새 목욕탕 친구가 되어버렸다.

 

 시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그녀의 출산을 돕기 위해 지난 8월 친정어머니가 한국을 방문하셨다. 3개월간 머물며 딸의 양육을 도와주던 그녀의 어머니가 이제 며칠 후면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간다. 자신을 위해 수고한 엄마를 위한 그녀의 깜짝 선물은 나와 함께 목욕탕 가는 것이라고 귀띔해준다. 나의 양해도 구하지 않은 선물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한국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선물할 작정이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짧은 기간 딸을 사이에 두고 만나면서 정이 흠뻑 들었던 친구의 어머니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우리 옷 벗으러 갈래요?” 깔깔거리며 통역을 하는 딸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얼굴이 붉은 단풍잎보다 더 빨갛게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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