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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대를 지울 수가 없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2. 7. 14:25

난 그대를 지울 수가 없다

유민지

 

  삼 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 사회친구로 한 팔년을 만난 친구인데 항상 만나면 따지기 잘하고,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선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여전히 부정적인 말부터 꺼내기 시작한다. 왜 그렇게 맺힌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 어지간하면 참고 만나려고 했는데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그녀의 '습관성 딴지걸기' 에 갈수록 지쳐 간다. 마음 한편에서는 친구에 대해서 진정성이 없이 만난다는 양심적 갈등도 일어난다. 그래서 이렇게 피곤하게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라면 차라리 거리를 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이야기를 나누는 끝에 휴정협정을 맺었었다. 그런 그 친구가 오랜만에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

 

  어인일인지 오늘은 자기가 버스 타고 나온다고 했다. 유치한 속내를 드러내는 말이지만 그 친구는 운전도 무섭다고 주차장에 파킹 해 놓았다면서 꼭 모시러 가야만 좋아했다. 그것까지는 좋다. 집 앞까지 데리러 가거나 데려다 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안다. 아니, 내가 뭐 자기 남편인줄 아나 알만한 여자가 왜 그럴까? 생각을 해도 도대체 그녀의 성정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좀 더 이해하고 조금만 너그러우면 되지 싶어 관계유지를 했다. 왜냐면 함께 공부 하고 함께 많은 것을 공유해야만 했던 인연의 역사가 있어서다. 코드가 맞고 안 맞고의 차원이 아닌 공간적인 만남이 그렇게 만들어 지곤 했다.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났는데 역시 변한 점이 하나도 없다. 3년 前이나 지금이나 똑 같다. 사람의 원단이 바뀌기는 정말로 힘 든 것 같다. 하긴 3년 안에 도 닦는 공부를 안 했는데 무슨 수로 바뀔 수 있단 말인가? 과학적 용어로 DNA가 그대로인데 무엇을 기대 한단 말인가? 갑자기 DNA 중 하나가 아름다운 변종바이러스로 탈바꿈 했다거나, 아니면 특별하게 수술을 해서 변형을 시켜 놓지 않는 한 일차적인 상식선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특히 오랜 습성에 젖은 작은 습관이나 행동은 더 그렇다. 그러니 좋아하지는 않는다 해도 그녀의 모든 부분을 잘 이해하고 받아 줄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소나무는 소나무이고 미루나무는 미루나무이고 코스모스는 코스모스 일 뿐이다.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가 내게는 정답이다. 아직 범부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다. ‘산이 물이고 물이 산으로’ 보이지를 않으니 말이다. 갈수록 사람들의 원 모습이 바뀌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끼고 있다. 다 각자 나름대로 고유성을 갖고 태어난 유아독존적인 존재인데 무엇이 어떻게 변하기를 기대 한단 말인가? 특히 40넘어서는 상대의 고집과 습관을 고친다는 것은 기우일 뿐 인정하는 편이 훨씬 속 편하고 빠르다. 문제는 좋은 성품이나 습관은 괜찮은데 고질적으로 고착된 부정적인 마인드나 나쁜 습관이다.

 

  다행히 매일 성숙 해지려고 공부하고 노력한 사람이라면 그 경우는 다를 것이다. 대충 세월 지나가기 바라면서 산 사람하고는 모든 면에서 그래도 다를 것이라고 본다. 성장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같다면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나무도 거름을 주고 햇빛을 받고 사랑을 받은 나무와 음지에서 대강 자란 나무는 분명 다르다. 그렇듯이 자신이 끝없이 연마하고 갈고 닦았는데 준비 안한 친구와 같다면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을까 싶지 않나 이 말이다.

 

  특히나 자기의 원 자아가 고집불통에 융화하기 어려운 성격이라면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나이 먹을수록 꼬질꼬질 따지기 좋아하고 흠잡기나 좋아한다면 배워야 할 이유도 없었고 노력해야 할 필요도 없다.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온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말씀 하셨다. ‘배운 사람은 배운 턱 해야 하는 거라고, 대학 나온 사람이 초등학교 나온 사람처럼 사고와 행동거지가 같다면 무엇 하러 배웠냐고?’, 또 ‘나이 먹으면 나이 값을 반드시 해야 질서가 유지 된다’고 강조 하신 엄마의 훈육도 자리 메김만 안 되었지 순 토종 심리 쪽 명언이다 싶을 정도로 살아가는데 지당한 말씀을 하신 것 같아 오늘의 내가 만들어 졌다 싶다.

 

  말과 행동이 일치 하지 않는 경우의 사람을 일러 성격장애고, 생체 나이는 분명 45세 정도 되었는데 하는 일이나 생각은 중학생 정도이면 성장장애, 발달장애라고 그 친구와 공부하면서 우스개삼아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다 잊은 것인지 그 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행동과 성격이 너무 많이 차이난다. 성적도 월등했고 성격도 학교 다닐 때는 모가 나지 않았었는데 또 다른 이면을 보게 된 경우가 이 친구다. 오죽하면 ‘내가 저 친구를 또 만나면 바보다’라고 속으로 다짐을 했을까 그러면서도 또 만나고 있으니 바보는 바보이다.

 

  자르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 어찌 보면 애매모호의 대표성을 지닌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람 같다. 변명 같지만 사람인데 어떻게 무 자르듯 싹뚝 잘라 낼 수 있단 말인가? 한 칼에 자르고 뒤돌아 웃으면서 살 용기가 없으니 이대로 유지하는 것이 마음이 편한 것이다. 물론 내가 택한 사람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마음을 다스려 친구로 관리해야지 하는 경향은 있다. 그러니 맘에 안들 경우 동성이지만 상대가 떠나가기만 기다리지 내가 보내기는 힘든 것이다. 하지만 나이 먹으면서 아이들 기르면서 가까이 있는 사람 다독거리며 사는 것도 힘든데 친구까지 그러니 아! 너도 나도 제대로 철들어서 만나자 하고 싶었던 것이다.

 

 

  세상살이는 원하지 않는 일을 내 맘처럼만 하면서 살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지나고 보면 그 속에서 오히려 배우는 것도 사실 많다. 나 혼자 살수 없는 세상인데 온갖 다양성을 만나면서 살아야 깨우치는 것도 있고 터득하는 것도 있게 되는 것이다. 어느 한 부분마다 인생수업에 필요치 않은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친구도 코드가 맞는 친구가 갈수록 좋은 것 같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에 이제 더 공감이 된다. ‘220v 전기 밥솥을 110v에 접지하면 고장이 난다’는 것이다. 그 때는 웃었는데 이제는 맘 편안한 것이 좋다는 말에는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 놈의 우정 때문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에 아직 내 낮은 마음은 편승한다. 그러기에 난 아직 그대를 지울 수가 없다. 산이 물로 보이고 물이 산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나이기에 말이다.

 

 * 예술시대 작가회회원, 예술세계 사무국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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