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일 / 이사랑
이른 아침
산비탈 밭에 댕겨온 어머니 말씀
숲속에서 날아온 멧비둘기가
밭에다 심어 논 콩
죄다 파먹었다
개망초 덤불 속에 숨은 고라니가
해가 잠든 사이 고구마 새순
죄다 따먹었다
내 어머니가 이랑마다 뿌린 땀
죄다 훔쳐 먹었다
나눠 줄 게 그거 밖에 더 있냐?
냅둬라
모두가 죄다 배고픈 죄
먹고 사는 일이 죄다
죄다.
- 우리詩 2009.11월호 신작 소시집- 1
지난 가을 학기 동양사상 기말시험에 낸 문제가 "환경론과 생태론을 비교 분석하라'였다.
인간과 자연을 대립항으로 보느냐 아니면 인간을 자연에 포섭된 개념으로 보느냐에 따라 갈래길이 생기는 셈이다.
천적이 없어 서울 시내에 출몰하는 멧돼지를 포획 사살하는 것과 천성산 도마뱀을 살리자고 단식하는 스님의 마음은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육식은 안되고 초식을 권장하는 근거가 목숨에 달려 있는 것인데 그 목숨을 목숨이게 하는 잣대는 또 무엇인가?
이사랑의 <먹고 사는 일>은 끊임없이 질문에 회의를 더한다.
세상에는 시끄러운 전쟁도 있고 조용한 전쟁도 있다. 나라와 나라 간의 전쟁, 민족간의 아귀다툼은 분명 시끄러운 전쟁이다.
이념으로 사람을 죽이고 성스런 종교로 목숨을 빼앗는다.
그렇다면 조용한 전쟁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자연계의 먹이사슬이다.
배고프니까 늑대가 토끼를 잡아 먹는다. 하마가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것은 비만 때문이 아니다.
덩치가 커야 먹히지 않을 확율이 높을 뿐이다.
결국 늙고 병들어 죽어 생전 한 주먹도 안되는 것들에게 제 몸을 나눠주게 될테지만 말이다.
인간이 추악하변서도 아름다운 까닭은 먹고 사는 일이 죄라는 마음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놓은 덫이나 올무에 걸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밀렵꾼이 되어서야 어디 사람 구실하겠는가?
시 속의 '어머니'가 혹시 멧비둘기에게, 고라니에게 험한 말을 던지지 는 않았는 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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