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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황금빛 주단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5. 9. 21:24

황금빛 주단


저녁 무렵, 베란다로 이어지는 주방문이 수상쩍다

누군가 꼭 서 있을 것 만 같은 묘한 기색이 들어

문을 살그머니 열었더니만

이런 세상에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황금빛 주단이 발아래로 깔린다

그 한 자락을 끌어당기려 해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

그냥 깔아 둔 채로 멍하니 서 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가 그 위에 누워본다

엎치락뒤치락 거리니 온 몸에 휘휘 감겨온다

비단을 두른 양 부드럽고 따순 기운에 눈마저 감긴다

꿈을 꾸듯 황홀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서서히 몸이 식어가는 느낌이 들어 눈을 뜨니

어느새 몸에 감겼던 비단이 스르르 흘러내리고 있다

흘러내려가는 비단은 벽을 타고 창을 너머 가고 있다

아름다운 주단을 깔아주고 간 이는 누구일까

이내 황홀한 기운을 다시 걷어가는 이 누굴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서운타고 해야 하나

내일 이맘때엔 소쿠리라도 하나 놓아두어야 할까보다



속 보이는 시


한옥순의 시를 한 마디로 평한다면 위트의 시라고 말 할 수 있다. 「황금 빛 주단」은 그 반대 쪽에 있다. 한옥순의 시를 접해 보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서 한 마디 거든다면  시적 대상의 희화, 감각적 묘사, 반전의 묘미가 승하여 읽는 재미만큼 시가 가벼워진다는 딜레마가 상존했다는 이야기이다.

황금빛 주단 이란 시제에서 웬만한 눈치면 그것이 저녁노을 이란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속보이다’의 용법은 언행의 겉과 속이 다름,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행위를 일컬음인데 여기서 속 보이다의 용법은 아예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헷갈리게 하려는 의도를 아예 접어두고 까놓고 드러낸다는 것이다. 시 쓰고 읽는 동네에서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시는 씹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시들이 공격받고 시 대점을 못 받는 이유는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처럼 입안에서 녹아버린다는데 있다. 감각의 즐거움은 있으나 유추의 노동 끝에 얻어지는 사유의 소득이 없다는데 있다. 쇠약한 사람에게 한시적으로 죽은 유용하지만 죽을 상용하게 되면 이 기능이 약화되고 필시 위장병에 걸리게 되는 이치와 다름없는 것이다. 좋은 시는 잘 말린 포와 같다. 딱딱함 속에 숨어 있는 맛은 씹지 않으면 결코 알아차릴 수 없다


황금 빛 주단이 노을임은 이미 앞에서 말했다. 화자는 아파트 안까지 들어온 노을을 맞이하면서 황홀감을 만끽한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노을 대신 어둠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여기까지가 한옥순 시인이 보여주는 속이다. 그러나 정작 이 시의 노림수는 그 다음에 있다.    아름다운 주단을 깔아주고 간 이는 누구일까/ 이내 황홀한 기운을 다시 걷어가는 이 누굴까 라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질문에 대답하려고 낑낑거릴 필요가 없다. 질문에 대답하려는 순간 또 한 번 반전의 덫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력하다. 황금빛 주단을 깔아놓거나 거둬가거나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자연 앞에 우리는 영원히 갓난 아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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