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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70년 헤이리 카메라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3. 24. 00:17

 2070년 헤이리 카메라타는
                                  류승도


헤이리 깊숙한 언덕 중간쯤에 2007년도의 음악감상 카페 카메라타가 있다
몬드리안의 수평 수직 원색 평면구성을 생각게 하는 현대식 시멘트 건축물이다
저녁 8시 갓 지났는데, 늦가을의 어둠은 죽음처럼 깊다
카페 안은 사방 그림자 색이고, 음악은 더 폴링 리브즈 분위기의 엘피판 재즈이다
당신은 낙엽 쌓인 끝날 것 같지 않은 윤회의 길을 걷는 독신의 가슴을 긁고
1930년대 공연용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높은 천장에 너른 공간에는 테이블이 적당한 간격으로 놓여 있는데
산 사람 아닌 영혼이라야 차나 커피를 마시기에 적당하다
그림자 색에는 차보다는 커피향이 더 어울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주인은 없는데 음악이 흐르고 차와 커피는 끓고 있다
사진을 하던 연인의 영혼이 예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를 잉태한 젊은 부부의 영혼이 아이의 장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룻밤을 조르던 청년과 여자친구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생의 나이를 먹고 있음일까
혼자 구석의 벽 쪽에 앉았던 오십대, 여류 예술가?는 보이지 않는다
사십대쯤의 아주 편안한 남자와 여자가 일상과 여행과 문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편안하나 왠지 모를 설레임이 있다
모두 둘이고, 모두 닮았으며, 모든 소리는 낮게 전해진다
사랑이나 자유의 영혼이 아니라면 이 공간에 앉아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커피의 김이 오르는 벽 위에는 흰색바탕의 똑같은 원형시계 세 개가 나란히 걸려있는데
시침과 분침이 돌고는 있으나 결코 8시에서 10시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역시 원형의 추는 시계 위의 그림자로 제자리를 왕복하고 있다
오늘 밤은 분명 2070년인데, 헤이리 카메라타는 2007년 11월 10(토)일의 저녁이다

 

 시에 규격화된 형식과 정의가 존재한다면 우리에게는 시를 쓸 자유도 읽을 권리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시를 읽는 독자가 된다는 것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시인은 자신의 시쓰기에 있어서 의도를 알고 있지만 독자는 시인의 의도도 헤아려야 하고 시의 내용도 파악하여야하는 이중의 고통을 감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가 어렵다든지, 시가 쉬어야 한다든지 하는 갑론을박이 횡횅하는 것이 아닐까?

시인이든, 독자이든 늘 기존의 시에 대한 관점을 무기로 삼아 시를 읽을 때 자신의 시관과 맞아떨어질 때는 편안함을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불편과 함께, 심지어는 불쾌감까지 가지게 된다.

   
읽기도 불편하고 해석하기도 불편하다. 마치 낯 선 사람을 낯선 장소에서 만난 느낌을 <2070년 헤이리 카메라타는>는 선사한다. 이 시는 분명 2007년 11월 10일 (토)의 어느 카페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오늘 밤은 2070년이라고 못 박고 있다. 2070년이라면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라져 버렸을 미래의 시간이다. 처음 이 시를 읽을 때 시인의 오타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행을 보니  틀림없이 오늘은 2070년이다. 아니 2007년 11월이다. 무슨 소용이랴! 풍경은 변함이 없다. 과거를 회상하든, 미래를 에측하든 카페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다름이 없을 것이다. 담소를 나누고 흘러간 노래를 들으며 커피플 마시고  고장안 시계는 제 자리에 멈추어 있다. 왜 인간은 시간에 연연해 할까? 늙어가고, 낡아져 가는 자신과 사물에 대한 애정과 증오의 변화 때문일까?

 

<2070년 헤이리 카메라타는>는  풍경을 통해서 세상을 곱씹어 보는 못된 습관을 꼬집는다. 의미없는 생은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그래서 인간은 여러기지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에 의미를 부여한다. - 당신은 낙엽 쌓인 끝날 것 같지 않은 윤회의 길을 걷는 독신의 가슴을 긁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카페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숙명이다.

 

다시 묻는다. 이 글은 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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