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고원자생식물원
나호열(예술세계 편집주간)
1. 태백의 추억
태백으로 가는 길은 멀다. 아니 길이 먼 것이 아니라 마음이 더 먼 것이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몇 년 전 새로 개통된 중앙고속도로를 경유, 제천 나들목에서 영월 방향 38번 국도를 잡아 사북, 고한을 거치면 닿게 되는 곳이 태백이다. 지금이야 태백에 남아 있는 탄광이 서너 곳에 불과하지만 1980년대만 해도 석탄에 의지해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제법 북적거리던 곳이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 분노한 탄광 근로자들이 분기 奮起했던 사북사태가 지나가고 나서 태백지역은 더 이상 추운 겨울, 등 시린 장삼이사들의 구들장을 덥혀주던 연탄 성역의 자리를 마감했다. 그리하여 행인지 불행인지 탄광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연탄이 가스와 석유에 밀려나기 시작하던 1990년 8월 나는 구곡양장 싸리재를 넘어 태백으로 갔다.
스스로를 일러 문제교사였다가 민주교사였다가 결국은 노조교사가 되었다는 시인 권혁소의 시집 <<수업시대>>의 뒷글을 쓴 인연으로 태백시내 다방에서 개최된 출판기념회에 초대되었던 것이다. 저녁 무렵이 되자 그 어둡고 비좁은 조그만 공간에 검은 석탄 자국이 꼬질하게 배어있는, 얼굴도 검고 온통 마음마저 검을 것만 같은 탄부들과 그 탄부의 어린아이들이 음악 선생이면서 시인인 한 젊은이의 장도를 축하하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그렇게 내가 만난 탄광 지대의 사람들은 봄꽃처럼 화사한 인사도 없이 허연 돼지비계에 김치를 말아 그들의 입을 막고 막걸리로 걸쭉해진 마음에 흘러간 옛 노래들을 젓가락 장단에 목이 쉬도록 하염없이 불러 제끼는 것이었다.
전직 경찰관을 아버지로 둔 시인은 혈기방장한 젊은 나이에 탄광 지대의 선생으로 부임해서 광부들과 희망도 없이 진폐증에 시달리는 그들의 삶과 마주치면서, 가난을 대물림하며 희망이 무엇인지조차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찌 슈베르트의 서정 가곡을 가르칠 수 있었겠는가… 권혁소의 시집 <<수업시대>>는 태백의 증언이면서 그 열악한 삶의 중심에서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창백한 지식인의 괴로움에 분노하는 처절한 외침이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시를 평하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곳은 먼 곳이다. 고비사막보다도 멀고 은하계 저 너머보다 아득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사람들은 그 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첩첩한 산골짜기에 스스로를 유폐시키거나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 곳에 있다.
그리고 이십 년이 훌쩍 지난 다음 다시 태백을 찾았을 때 지금도 강원도 산골 어드메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을 권혁소의 시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는 원통에서 교편을 잡다가 전교조 강원도 지부장으로 춘천에 있다는 사실을 백담사 만해마을 운영과장으로 있는 손홍기 시인으로부터 최근에 들었다.-
너는 몸을 파는 창녀
나는 땅을 파는 창녀
네가 음습한 골목의 어귀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지나친 친절로 떠날 수 없듯
나는 이 검은 비밀의 마을을 떠날 수 없다
가위눌림 속 매목의 씨앗들이 너를 병들게 하고
나는 낡은 방진 마스크와 함께
진폐증으로 차츰 죽어간다
네가 그 한 뼘 남짓한 불빛 아래서
이층으로 잠을 청하듯, 나는
굽은 등으로 막장에 산다
막장에서는 곡괭이질로 탄을 캐고
돌아와 닭장에서는 무릎꿇고 아내의 구멍을 판다
우리들의 빨래가 청결한 햇볕 아래
널려 있을 수 없는 오늘
갑자기 묻는다
네게도 노동3권이 있는지
진폐증은 교육되지 않고
이미 다른 일을 시작하기에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한 가지 병에 익숙해 왔다
우리들의 회장님은 멀리 계시고
이제 아이들은 더 이상
광부인 아버지를
자랑스런 산업역군 미래의 주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랑하지 않는다
-‘광부의 노래 2’ 전문
2. 다시 꿈꾸는 태백
다시 태백을 찾게 된 것은 도박의 근원지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생활형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강원랜드(현재의 하이원 리조트)의 공연 지원을 위한 현장 답사 때문이었다. 태백, 사북, 고한, 신동, 도계, 상동 등 폐광촌의 경제를 되살리면서 지역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희망찬 계획으로 1995년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함에 따라 사업비 615억 원을 투입하여 2000년 10월 국내 13개 카지노 중 유일하게 내국인 출입이 허가된 카지노로 개장한 것이 강원랜드이다. 2007년 6월 강원랜드는 단순한 도박장이 아니라 사계절 즐길 수 있는 가족형 종합 리조트로 변신을 꾀하면서 강원랜드 카지노, 강원랜드 호텔, 하이원 CC, 하이원 스키, 하이원 호텔, 하이원 테마파크로 조직을 개편하게 된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하이원 리조트는 앞으로 총 425억 원을 투입하여 기존 테마파크를 키즈랜드, 레고랜드, 꽃 정원으로 바꾸고, 호수 주변에 워터파크를 조성하여 버디후룸라인, 파도 풀 등의 시설을 설치하는 한편 1,000평의 고급 스파시설을 조성하여 회원제로 피트니스센터, 요가 등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소비개념의 계획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주변의 환경을 활용한 자연친화적인 레저시설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원 리조트 주변의 석탄을 운반하던 운탄도로 80킬로미터를 활용하여 오프로드, 승마, 산악자전거, 트래킹, 크로스컨트리 등의 레포츠를 결합한다는 계획이다. 과거 탄광시대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역사교육의 현장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2007년 가을부터 한국예총은 산하 협회의 협조를 얻어 하이원 리조트 내에 산재한 시설, 즉 야외무대를 활용하여 비보이 공연, 밴드 공연을 펼치는 한편 실내 공연장에서는 시인, 작가들의 시화전, 예술 관련 세미나, 연극 공연 등을 개최하기로 하는 협약을 맺음으로써 지역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대중들에게 수준 높은 예술의 향기를 맛보게 한다는 기획을 마련한 바 있으며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국 어디서나 쉽게 닿을 수 없는 태백지역이 안고 있는 교통의 난점과 소비지향적 여가 패턴은 일반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낙후된 지역 여건을 향상시키고 향토를 지키는 지역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피부에 와 닿는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역주민들의 생활에 밀착되지 못하고 지나치게 자본주의적 색채가 강한 점이 현재 하이원 리조트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일반 서민들이 충분한 시간을 통해 휴식을 즐기고 문화적 포만감을 느끼기에 하이원 리조트는 적지 않은 금전적 지출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장소로 한계가 있다고 보이는 것이다.
3. 또 다른 태백의 진경을 마주하다
지난 십여 년간의 정치적 사회적 이슈는 지역의 균형발전이었다. 공단을 만들고 혁신도시나 문화도시를 조성하는 일들은 지방자치제도와 맞물리면서 지역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일부의 축제나 국제영화제 같은 몇몇의 프로젝트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이지만 대부분은 부실과 적자경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역의 특성이 살아있는 숨결이 돋아나고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그로 인한 만족이 전제되지 않는 한 외부로부터 이식된 문화운동은 고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탄광지대에서 고급레포츠의 산실로 거듭나고 있는 표피적 현상만으로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데 마침 이곳에서 해바라기 축제를 하는 곳이 있다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해바라기라고 하면 한여름에 개화하는 꽃인데 해발 일천 미터에 이르는 태백지역은 한여름이 지난 9월 초에도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이원 리조트를 뒤로 하고 고한을 빠져나오면 태백으로 가는 금대봉 터널이 나오고 한강의 발원지라고 하는 검룡소 가는 31번 국도 표지가 나온다. 길의 초입은 국도답지 않게 좁아 길을 잘못 들지 않았나 걱정도 하게 된다. 그러나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금세 길이 훤해지고 오른쪽으로 구와우 마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홉 마리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는 구와우 마을의 해바라기는 태백 고원자생식물원 경내에 들어가야 볼 수 있다. 해바라기 축제가 시작되지 않아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살 필요 없이 온실 같은 화랑을 지나 살림집으로 쓰고 있는 곳까지 직행한다.
김남표, 아직 오십이 되지 않았으나 도시에 나가 인테리어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내, 고향 태백에 들어와 3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땅을 전 재산을 들여 매입하고 처음에는 배추 농사를 시작했는데 아마도 재미를 보지 못한 모양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태백시내에서 살림을 하고 혼자 이곳에 들어와 사는데 무섭게 외로워서 독한 술이 아니면 밤을 보내기 힘들다고 엄살을 떠는 사내, 언제든 이곳에 묵으면서 밤바람 소리를 들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를 하는 사내… 그를 따라 나서는 길은 간간이 비 뿌리고 찬 기운이 다가와 방풍 자켓을 자꾸 여미게 한다.
총 3.5 킬로미터에 이르는 탐방로는 얼레지, 노루귀, 바람꽃등 고산지대에서만 사는 야생화와 약초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될 수 있으면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자연의 섭리 그대로 싹 틔우고 잎 세우고 꽃을 피우게 한다는 김남표 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끼리 주고받는 말이 아니라 이 우주 공통의 -범속한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인 듯 낯설면서도 정겹다. “저것 보세요! 작년에는 몇 포기 안 되었었는데… 이제 길가까지 나온 것 보니 얼마나 씩씩해요!”
구와우 안내도와 매표소
탐방로는 흙길이다. 비가 추적거리기 때문인지 신발에 진흙이 잔뜩 묻는다. 10여 분을 걷다 보면 망루가 나타난다. 불쑥 나타난 것이 아니라 멀리서부터 정면으로 우리를 향해 있던 것인데 길이 유턴을 하면서 제 모습을 보여준다. 망루라 한다. 멧돼지가 내려오고 고라니도 내려오는 탓에 귀중한 산골 밭을 지키려는 옛사람들이 사용하던 망루를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눈앞에 비탈길이 보이니 좀 쉬었으면 싶은데 탐방로에는 벤치가 없다. 쉬고 싶으면 풀숲에 털썩 주저앉거나 서서 먼 산과 산을 바라보면서 바람을 맞아야 한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함백, 태백산에서 내달려오는 바람이 마주치는 산 정상에 서면 조각품 몇 점이 이정표처럼 서 있는 것이 보이고 발아래 너른 해바라기 밭이 펼쳐진다.
해바라기 밭
탐방로 입구에 있던 해바라기 밭은 맛보기에 불과하고 발품을 팔아 정상에 서야 해바라기 군락의 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해바라기 씨앗이 익으면 기름을 내어 수익도 올리고 해바라기가 지고 나면 유채를 심어볼까 한다는 이야기, 하산 길은 해바라기 군락 속으로 꾸불꾸불 이어지므로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탐방이 끝나가는 지점 세련되지도 않고 어딘가 엉성해 보이기도 하는 2층 건물이 보인다. 1층은 전시실로 쓰고 2층은 하룻밤이나 아니, 자연의 엄숙함이나 불편함을 흠뻑 맛보고 싶어 묵어가는 탐방객들에게 내어주는 방 두어 개, 아직 미완성이다.
앤디 탐슨 의 Mirror
구와우 아래를 향해 있는 서용선의 조각품
할아텍 전시 포스터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태백시내에서 들어온 그의 아내와 아이가 온기를 더해준다.
숙소로 들어오는 온실 같은 전시관에 그림들이 걸려 있다. 할아텍 halartec 동인들의 작품들이라고 한다. 2005년 7월 26일부터 8월 15일까지 이곳 전시관에서 「만발하다- 태백. 생명」이라는 타이틀로 전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진숙 미술평론가의 글을 읽는다.
이 전시는 신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꾸는 작은 꿈이다. 그것은 어떤 계산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나직한 기원 같은 꿈이다. 그러나 이 기원의 밑바닥에는 탄생신화가 되고자 하는 단호한 의지가 있다. 그 신화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2001년부터 폐광촌 철암에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시작하였다. 어느 날 꽃씨로 낯선 곳에 날아들어 와 싹을 틔우고 해마다 더 많은 자손들을 번성시키는 들꽃처럼 이 작가들은 철암과 태백의 삶으로 날아들었다. 매주 세 번째 토요일에 1박2일의 여정 기간으로 그들은 이곳에 와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렸다. 마을 주민들은 거리를 배회하며 작업을 하는 이 작가들에 익숙해졌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21세기의 생활과 문화에서 잊혀진 이곳에서 크고 작은 전시회를 가졌다. 하여서 한때 번잡했으나 이제는 인적이 드문 역사가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되기도 하였다.
이런 작가들의 태도는 낯선 곳의 이국적인 풍경에 열광하여 색다른 리포트를 하고 이내 떠나고 마는 관광주의자의 그것, 혹은 회고주의자들의 의미 없는 과거의 집착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자신들이 뿌린 작은 씨앗이 움터 이 지역에 새로운 삶의 모습이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양길로 접어든 석탄산업시설은 아무 효용가치가 없는 쓰레기더미, 보존은커녕 폐기비용조차 지불하기 아까운 골칫덩어리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려진 선탄장과 낡은 광산의 건물, 인적이 뜸해진 역사, 버려진 사택지들과 오래된 거리와 낡은 담벼락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바로 이 할아텍의 작가들이었다.
아마도 봉화 쪽으로 길을 잡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성이나 철암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 묘사된 것처럼, 인적이 끊기고 대도시에 벌어지는 재개발의 탐욕과 아귀다툼이 소용이 없는 산비탈의 다닥집들과 그 집들의 고요한 허물어짐이 사북이나 고한에서 느꼈던 궁벽함과는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철암에는 강원랜드가 하이원 리조트가 없다. 그러나 할아텍의 작가들은 가난함과 절망의 가치를 철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되돌려주려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본 가치는 당장의 효용성만을 추구하는 근시안적이고 편협한 경제적 관점에서는 절대 포착되지 않는 미학적, 역사적 사회적 가치였다. 이런 가치들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장기적으로는 결국 경제적인 효용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독일의 옛 탄전 지역인 루르지방의 변모에서 이미 보아왔다. 폐광촌 철암-태백 지역은 무리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되었던 석탄산업의 핵심지역이었고 시대의 변모에 따라 쇠락해 갔다. 그러나 이 지역 자체가 치열했던 한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거대한 박물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작가들은 예리한 감수성과 실천력으로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이진숙의 글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저항과 굴복, 절망과 희망의 변증법은 파괴와 건설의 순환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태백의 사람들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탄전지대의 그림자가 부끄럽지 않은 바로 그들의 초상이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함께 느끼고자 하는 할아텍의 작가들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짧은 여정에서 구와우의 김남표를 만나고 할아텍의 작가들을 만났던 것은 행운이었다. 하이원 리조트의 넓은 주차장에 가득했던 승용차들과 찜질방의 코 고는 소리도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여가는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지역의 흙냄새를 맡고, 삶을 체험하며 느낄 수 있어야 하며 돌아올 때쯤이면 묵직하게 가슴에 돌 하나를 얹어놓은 듯한 애틋함이 깃발처럼 나부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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