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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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바람따라(여행기)

開心寺 저 쪽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8. 5. 12. 17:38
 

開心寺 저 쪽


일요일 금쪽 같은 시간을 흘려 버렸다. 어제 저녁 후배의 박사 학위 축하 자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뒤를 살펴보지도 않고 후진을 해 버린 젊은이는 순순히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고 보험회사에 연락을 취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다행히 문 닫지 않은 카센터가 있기에 수리해야할 부분을 살펴보았다. 앞 범퍼가 내려 앉았고, 전조등이 파손되어 있었다. 보험회사와 연락을 취한 카센터의 주인은 범퍼를 교체해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니 사소한 부분까지도 갈아도 된다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전화를 받은 보험회사 직원도 내가 피해자임이 확실하므로 수리를 해도 좋다고 하였으므로 카센터 주인의 말을 따를까 생각해 보았다.

" 솔직하게 말해서 범퍼를 갈아야 할 지경입니까?"

" 겉으로 봐서는 괜찮은데요, 아무래도 한 번 충격 받은 부분은 약해지니까 이렇게 사고를 당하면 대부분 갈아 버리죠. 가해자는 할 말이 없으니까요"

" 그럼, 범퍼는 벗겨진 부분만 칠해 주고 놔두세요"

카센터 주인은 순간 실망의 눈빛을 비치더니 끌끌 혀를 찼다.

"지금은 부속도 없으니 내일 아침에 와서 고치시고요, 그리고 웬만하면 범퍼도 가는 쪽으로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이 피해자인데 그렇게 마음 써 줘 봤자 누가 알아주나요"

집으로 돌아오는데 차 핸들이 떨리고, 소음이 심했다. 이게 다 범퍼에 이상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마음이 쏠리고 이 기회에 갈아버릴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잘못은 그 젊은이에게 있는 것이고 피해자인 나는 응당 나의 피해에 대해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쓸만한 범퍼를 교체를 한다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범퍼는 소모품인데 보기 흉할 정도가 아니면 그대로 수리해서 타는 것이 좋지 않은가?

사실 사고가 나면 파손이 의심되는 부분은 모조리 고쳐 버리는 게 우리의 관습이 아닌가?

아침 일찍 카센터로 가서 수리를 마쳤는데 카센터 주인은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아 보험처리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범퍼를 교체해야 이익이 날 텐데 멍청한 피해자는 범퍼를 놔두겠다고 하니 심술이 난 모양이었다. 보험회사는 전화를 받지 않고, 할 수 없이 가해자인 젊은이에게 연락을 했다. 이미 시계는 정오를 넘어가고 있었고,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라오기도 했다. 젊은이는 내 계좌번호를 알려주면 입금 할테니 나에게 수리비를 선지불해주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사실, 범퍼도 갈려고 생각했었는데.... 꼭 고쳐야 할 곳만 고쳤다는 것을 알아주시오. 그리고 수리비는 통장으로 넣어 주시오"

나는 그 젊은이의 명함 한 장만을 받은 터였다. 면허증을 보여 달라고도 하지 않았고, 보험가입 증명서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멍청한 일을 한 셈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소음이 심했다. 큰 길가에 트럭을 대놓고 차 용품을 팔고 차 찌그러진 곳을 펴주는 일도 하는 한 사내가 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한 삼 년 되는데, 그는 해가 지자마자 장사 일을 거둔다. 건너편에서는 한 밤중까지 물건을 파는데 그 사내는 어두워지면 곧바로 파장이다.

"여보게, 자네 그렇게 장사해서 어떻게 돈 벌겠나"

"그러면 저도 좋은데요, 어두워지면 물건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성실하게 차를 볼 수가 없어요. 엉성하게 대충하면 마음이 찜찜하지요. 다  내 양심 문제지요" 


차를 살펴 본 사내는 범퍼의 나사를 풀더니 휘어진 철판을 분해해서 망치로 두드리고 펴서 범퍼가 떨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해 주었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잘 하신거에요. 남들이 그런다고 나도 따라하면 똑같은 사람이죠. 손해인지 이익인지는 지나 봐야 알지요"

한사코 돈을 받지 않겠다는 그 사내에게 지폐 한 장을 건네주고  붉은 신호등 앞에 선 순간  훤히 바라다 보일 것 같은 우리가 도달해야할 미래는 한 구비씩 돌고 돌면서 한 장면 씩 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직선으로 길을 내거나 계단을 내어버리면 손쉽게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길은 조금씩 몸을 튼다. 아직 개심사 가는 길에는 주차비도 없고 입장료도 없다. 洗心洞 글귀를 눈여겨보고 멀지 않은 거리를 조금씩 몸을 틀면서 뻐꾸기 울음을 저어가다 보면 불쑥 다가서는 개심사. 마음을 열면 저 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잠시 잠깐 젊은이를 잊고, 그가 입금할 계좌번호를 잊고, 카센터 주인을 잊고, 노점상 사내를 잊었다.


개심사 저 쪽


제 나이만큼 굽은 소나무

길인 줄 알아 고개 돌리고

길은 어디로 가는 줄 알아

몇  번이나 몸을 튼다

한 구비 돌 때마다

뻐꾸기 울음 서럽고

배롱나무도 허물을 자꾸 벗는다


주먹을 폈다

오무리는

개심사 저 쪽



開心寺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절로서 백제 말기인 서기654년 慧鑑이 開元寺로 창건하였고, 1350년 處能이 중창하면서 개심사로 개칭하였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해를 면한 충청, 전라도 길이 한결 수월해져서 서산 인터체인지를 나오자마자 우회전하면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이다.

瑞山에 들어서면 나는 잠시 막연해진다. 서산 마애불, 보원사터, 해미읍성, 안면도를 바라보며 부석사(서산시 부석면에 있는 절, 영주 부석사와 절 이름은 똑같다)에서 맞이하는 낙조를 한꺼번에 음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왕산 기슭의 개심사는 결코 큰 절이 아니다. 절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잘 가꾼 여염집 같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어디에 절이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내가 보기에 개심사의 매력은 결코 먼 거리가 아닌데도 구비치는 우리네 인생처럼 돌고 돌아야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심사에 가면 개심사의 저 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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